동생은 떡을 좋아한다. 이맘때가 되면 쑥떡을 사와서 같이 먹자 한다. 떡을 먹을 때마다 “옛날에 먹던 그 맛이 아니야” 하고 습관처럼 말한다. 떡에 콩고물을 묻혀 먹으면 그 맛이 달다. 고물의 단맛과 잘 어우러지는 떡이 쑥떡이다. 쑥의 쌉쌀한 맛과 콩고물의 고소함이 어우러지면 봄향기가 입 안 가득 번지는데 예전의 `그 맛`이 아니라는 것이다. 물질적 풍요가 인간의 입맛까지도 변화시키는 모양이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동생은 유난히 병치레가 잦았다. 어릴 적 동생과 나는 봄이 다 가도록 집안에서만 놀아야했다. 동생 돌보기는 내 몫이었기에 봄방학이 되어서 친구들과 밖에서 놀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다. 방학 내내 우리들의 간식은 으레 쑥떡이었다. 따뜻한 아랫목에 이불을 깔고서 콩고물 듬뿍 묻힌 떡을 먹으며 가루로 범벅이 된 얼굴을 보며 깔깔 웃었던 기억들.
이월에 쑥떡을 해먹는 풍습은 영남지방이나 바닷가 지방에서 예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풍습이다. 이월 초하루에 떡을 해서 나눠먹는 것은 바람을 관장하는 신이 내려온다는 속설 때문이다. 해안지방에는 이월을 `영등할미달`, `바람달`이라고도 부른다. 음력 이월 첫째 날을 부르는 이름은 실로 다양하다. `이월 초하루, 머슴날, 농군(農軍)의 날, 바람님 오는날과 가는 날(풍신날), 바람이 불면 안 되는 날, 영동할머니 날, 영등할머니 제삿날, 이월 밥 해 먹는 날, 이월 할매 먹는 날` 등 농사와 바람에 관련된 이름이 주를 이룬다. 농사와 어업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자연의 현상이기에 자연스레 이월을 바람달이라고 불렀을 것이다. 바람을 관장하는 신을 할머니로 호칭했으니 초하루에 쑥떡을 해먹는 것은 할머니에게도 좋은 떡이라고 생각한 마음이 담겼는지도 모르겠다. 단군신화에도 곰은 쑥과 마늘을 먹고 여자가 됐다하니 쑥은 분명 여자에게 좋은 음식인 것 같다. 혈액순환을 도와주고 피를 맑게 하고 자궁을 따뜻하게 하여 여자에게 좋은 효능이 있다 한다.
이월에 떡을 할 때 쓰는 쑥은 말린 쑥이다. 쑥은 날씨가 더워지면 독성이 생기기에 이른 봄부터 단오까지만 채취한다. 쑥은 응달에서 자란 햇잎이 부드럽고 향도 좋다. 채취한 쑥들은 데쳐서 바람이 서늘한 곳에서 말려야 한다. 곰팡이가 피지 않게 바람이 잘 통하는 곳이 좋다. 잎이 여린 쑥은 살짝 데쳐서 냉동시켰다가 필요에 따라 음식에 넣어 먹어도 된다. 얼린 쑥은 향이나 식감이 크게 변하지 않으니 제철일 때 넉넉하게 갈무리해두면 좋다. 꽃샘추위 속에 조금씩 봄기운이 퍼지면 마른 잔디 밑이나 양지쪽 가시덤불 아래에서 제일 먼저 볼 수 있는 것이 쑥이다. 겨우내 혹한을 이기고 초봄의 햇살 아래 막 연한 촉을 내미는 쑥. 참으로 귀한 풀이다.
창에 스미는 햇살에 봄 내음이 난다. 밭에는 곧 애쑥이 올라올 것이다. 음식은 제철에 먹는 것이 더없이 좋다. 쑥은 약으로서의 효능도 뛰어나니 자연이 주는 보약이다. 해쑥을 넣어 끓인 쑥 된장국의 쌉쓰레한 맛은 겨울 동안 잃어버린 입맛도 찾아 줄 것이다. 올 봄에는 쑥을 캐서 떡을 해먹어야겠다. 가까이 살아도 이제는 어릴 적 사소한 일로 마음껏 웃던 추억들이 별로 생기지 않는 듯하다. 봄 햇살이 좀 따스해지면 동생과 쑥을 캐러 가야겠다. 등이 따뜻해지도록 쑥을 캐다보면 바구니 가득 또 새로운 추억이 담기겠지. 겨울 찬바람처럼 움츠러들었던 마음에도 자주 만나고 부대끼다보면 해쑥 같이 파릇한 정이 돋을 것만 같다. 애쑥에 쌀가루를 살짝 버무려 된장을 넣고 보글보글 된장국을 끓이고 쫀득하고 찰진 쑥떡을 내어 둘만의 시간을 만들어야겠다. 어느새 마음이 쑥밭에 나가 연한 쑥을 뜯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