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팝나무에 꽃이 피는 오월이면, 흥해 향교산은 마치 폭설이 내린 듯 온산이 환해진다. 파르스름한 빛을 살짝 띤 꽃숭어리를 달고 군락지를 이룬 모양새가 함박눈이 쌓인 듯하다.
꽃이름은 여름이 시작되는 `입하(立夏)에 꽃이 피기에 입하목이라 부른 것에서 유래되었다`고도 하고 `꽃이 핀 모양이 이밥(쌀밥)을 담아놓은 듯하다`하여 붙여졌다고도 한다. 입하는 양력으로 오월 초순이고 음력으로는 사월에 들어가는 24절기 중 일곱 번째 절기이다. 바람은 서늘하고 햇살은 보리 익기에 좋을 만큼 따뜻한 시기이다. 곡식들을 저장해놓은 뒤주가 바닥을 드러내는 보릿고개 무렵, 그 시기에 피는 꽃이 이팝이다. 꽃잎이 마치 이밥(쌀밥)처럼 보인다. 이팝이라는 이름에는 절망 끝에서 희망을 노래하는 사람들의 간절한 소망이 담긴 것 같다. 보리가 익을 무렵 논농사가 시작된다. 허기진 배를 달래가며 모를 심다가 아픈 허리를 펴면, 하얗게 핀 이팝꽃에 허기짐이 더해졌을 것이다. 열심히 일하면 하얀 쌀밥을 배불리 먹을 수 있을 거라는 서러운 꿈. “올해는 농사가 대풍이 들것네” 꽃을 보며 한해 농사를 점치곤 했으리라.
내가 이팝나무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열한 살쯤 가을이다. 삼척에서 떠나와 흥해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과도 헤어졌다. 친구를 만날 수 없다는 슬픔보다 더 무서운 것은 대문 밖에 떡하니 서있는 키 큰 나무였다. 엄마는 마당이 있는 집이라 꽃이며 채소를 키울 수 있다고 좋아하셨지만 나는 마당에 나가는 것이 무서웠다. 산 아래 집이 있으니 큰 나무들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 같아 방문을 나가는 것도 두려웠다. 야단을 맞아가며 다닌 등하교 길, 나무 근처를 오갈 때는 땅만 보고 다녔다. 그렇게 그 해 겨울방학이 될 때까지 나는 제대로 하늘을 올려다보지 못했다. 그런 내 마음을 아셨을까? 아버지는 산에 놀러가자고 하셨다. 무서워서 싫다했지만 내 손을 꼭 잡아주셨다. 산으로 향하는 길에는 계단이 있다. 이사하고 처음으로 아버지 손을 잡고 함께 계단을 올라가보았다. 마음속으로 계단을 헤아리며 따라 오르다보니 무서움을 잊을 수 있었다. 어렵게 내딛은 걸음이었지만 계단을 다 오르고 나니 우리 집 마당도 보이고 나무들도 보였다. 아버지는 나무와 친해지는 방법을 알려주셨다. 쭈뼛쭈뼛 손을 내밀어 나무와 수인사를 나누던 그날, 처음으로 나무의 이름이 이팝이라는 걸 알았다. 그 후 몇 번을 더 아버지가 나를 산에 데려가 주셨고 그렇게 나는 나무와 친해질 수 있었다. 그때부터 희망의 나무였다. 친구가 없었던 나에게 친구가 되어주었고, 속상한 일로 찾아가면 등을 내어주곤 했다.
겨울 이팝나무에 하얗게 함박눈꽃이 핀 것을 처음 본 것은 아버지가 산에 가신 후 영원히 집으로 돌아오지 않은 해였다. 눈 구경이 힘든 이곳에 그해는 몇 번의 폭설이 내렸다. 그 후, 눈도, 꽃도 나무도 다 보기 싫어졌다. 꽃이 피는 봄날도, 눈 내리는 겨울 숲도 모두모두 잊고 싶었는지 모른다. 이팝나무 아래서 얼마나 서럽게 울었던지. 그 후로 나는 이팝나무의 소식이 궁금하지 않았다.
다시 찾아간 겨울 숲, 이팝나무 아래에 서니 꼬마아이가 그곳에 있다. 나무 밑동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본다. 뉘엿뉘엿 해가 지고 있다. 어릴 적 그때도 아버지 손을 잡고 나무에 기대어 지는 해를 본 적이 있다. 칼바람이 부는 날이었지만 손을 잡고 나무에 기대었을 때 등이 따뜻했던 기억은 잊을 수 없다. 등을 기대고 나즈막이 나무에게 말을 걸어본다. 이팝나무 삭정이처럼 떨어져 나가는 기억들. 기억들을 고봉밥처럼 담아 허기를 채우고 싶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