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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형 비리

서동훈(칼럼니스트)
등록일 2016-11-03 02:01 게재일 2016-11-03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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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22대 임금인 정조시대 홍국영은 호위대장 주제에 정승판서를 호령했다. 왕의 등극을 도왔기 때문. 23대 순조때는 왕비의 친정 아버지 김조순이 득세, 안동김씨의 권세가 하늘을 찔렀다. 24대 현종 때는 풍양조씨 조만영이 세도를 부렸다. 순원왕후가 수렴청정을 했고, 현종이 일찍 승하하면서 풍양조씨의 세도정치는 겨우 5년이었다. 철종이 강화도에 숨어 농부로 살아가다가 `왕실의 피`를 물려받았다는 이유로 느닷없이 임금이 되지만 일자무식인 그는 애당초 허수아비였고 안동김씨 일문이 재집권하면서 그 세도정치는 무려 60년이나 계속되다가 흥선대원군에 와서 마감된다.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반드시 부패하기 마련이어서 당시 삼정(三政·전정 군정 환곡)의 문란은 망국의 원인이 됐다.

권력형 비리는 현대사회에 오면서도 변함 없이 이어졌다. 1960년 부통령 이기붕 일가는 맏아들 이강석의 권총에 의해 몰살되는 비운을 맞았다. “박마리아의 안사람 이기붕”이라 할 정도로 부인의 위세는 외교에까지 미쳤다. 전두환시절의 `장영자-이철희`금융사기사건은 장영자의 `젊은시절 30여 년`을 감옥에서 보내게 했다. 이 사건때문에 `금융실명제`가 논의됐으나 기득권층과 정치권의 반대로 계속 미뤄지다가 YS가 전격적으로 시행했다. 노태우 정권 때는 박철언, YS때는 차남 김현철, 김대중 때는 아들 3형제가 모두 처벌받았고, 노무현때는 형 노건평의 뇌물사건, 이명박때는 처사촌 김옥희·김재홍이 권력형 비리의 중심이었다.

YS는 공헌도 많았지만 IMF의 원인을 제공한 탓으로 “나라 망친 대통령”이란 말이 따라다녔다. 그 후 19년이 지난 지금 비슷한 상황이 벌어진다. `최순실 세도정치`때문에 관료사회의 사기(士氣)는 형편 없이 떨어지고 언론은 등을 돌리고, 야당은 사사건건 반대만 했으니 경제인이 안심하고 투자할 수 없다. 정치권은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모른 척했다. 곪아터져서 박근혜 정권이 자멸하기를 기다린 것이다. 적은 언제나 내부에 있고, 권력형 비리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반복된다.

/서동훈(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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