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은 성서에 접할 권한이 없고, 글을 몰라 법률서적을 읽을 수 없으니, 성직자와 권력자들은 제멋대로 하면서 “성서에 그렇게 적혀 있다” “경국대전에 그렇게 나와 있다”란 말로 눌렀다.
세종임금이 훈민정음을 창제한 것은 바로 이 언어권력을 백성과 나누겠다는 `언어혁명·정치혁명`이었다. 그래서 최만리가 “백성이 글을 배워 법률서적을 읽게 되면 다스림이 어려워집니다” 했다.
중국의 한문(漢文)과 다른 `조선의 언어`를 따로 가진다는 것은 일종의 반역이었다. 중국이 알면 보복을 하고 압박을 가하고 간섭해서 막았을 것이다. 그래서 세종은 비밀리에 이를 진행했고, 다 만들어놓고도 수년간 반포를 못했다.
결국 발표를 하면서 “진서(한문)을 배우지 못한 여자들을 위한 글”이란 단서를 달아 국내외적 공격을 피해갔다. 한글은 탄생부터 이렇게 `업동이` `데려온 자식`이었는데, 그 후에도 수난은 계속됐다.
과거시험에 한글시험은 없고 계속 사서삼경·한시였고, 일제때는 한글이 말살될 뻔했으며, 해방 후에는 영어에 일방적으로 밀렸다. 학생들은 영어공부에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했다. 오늘날에는 `세종대왕이 결코 알아먹지 못할 한글`로 타락해가고 있다.
`틀딱충`은 틀니를 딱딱거리는 벌레란 말인데, 노인을 비하하는 `혐오 신조어`. `급식충`은 학교 급식을 먹는 아이들. `개저씨`는 개와 아저씨의 합성어로 장년층 남자를 조롱하는 말. `맘충`은 극성부리는 엄마. `설명충`은 안 해도 될 설명을 장황하게 하는 선생. `한남충`은 한국 남자 벌레. `일베충`은 일간 베스트 회원. 벌레충(蟲)자를 붙이는 것은 “혐오한다”는 뜻이다. 밥만 축내는 사람은 `식충`. 잠만 자는 게으른 사람을 `잠충이`이라 하는 것과 같다. 이런 혐오언어는 남을 공격하고 갈등을 조장하는 흉기가 된다. 언어권력이 어느새 언어흉기가 돼버린 세상이다.
한글날을 전후한 무렵에는 늘 `한글 순화`를 위한 움직임이 나타난다.
교육부는 일본어투 한자나 표현, 외래어를 순수 우리말로 다듬는 정책을 펴고 있다. `~에 대하여`란 표현은 일본어투이다. 강점 36년이 우리말을 그렇게 오염시켰다. `대하여`를 빼면 훨씬 우리말답다. `~할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물이 부족할 경우에”는 “물이 부족할 때”로 하면 된다. 일상용어에 영어나 한문숙어를 섞으면 유식해 보인다는 `언어사대주의`도 이제 깨야 한다.
되도록 한글로 바꿔쓰는 일에 힘을 더 기울여야 한다. 번역투 문장을 세련된 문장으로 오해하는 일도 없어져야 할 악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