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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다”

등록일 2016-09-23 02:01 게재일 2016-09-23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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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순영수필가
휴대전화가 울렸다. 화면에 `개똥`이 선명하게 나타났다. “오, 개또이~!” 반가움이 앞서 별명을 부르고 말았다. 그런데 “개똥이 아니고 내다.”라는 굵직한 목소리의 대답이 돌아왔다. 나한테 `내다`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다급하게 머릿속 안테나를 작동시켜 찾아보았지만 낯선 목소리의 주인은 탐지망에 잡히지 않았다. “누구세요?”하고 조심스레 물었다. “야, 내다, 내. 니 내 모르겠나.”라고 쏜살같이 한마디를 내뱉고는 전화를 끊어버리는 게 아닌가.

서너 시간이 지나서 같은 번호의 전화가 또 걸려왔다. 잠시 망설이다가 받았더니 다짜고짜 하는 말이 “순영아, 내다. 니 진짜 내 모르겠나.”하지 않은가. 나를 알고 있는 사람임에는 분명한 것 같은데 나는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은빛 머리카락이 슬몃슬몃 보이는 나에게 황소 같은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부를 사람도 몇 안 된다. 해서 나도 “야, 니 누고. 이름을 밝혀라.”라고 씩씩하게 대응을 했지만 돌아오는 응답은 뚱딴지같다.

나를 모르겠나, 섭섭하다, 너무하다, 그럴 수가 있나, 따위의 말만 되풀이 하더니 또 전화를 끊어버린다. 모임에 가 있는 다른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나한테 전화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물었다. 그 동무도 가관이다. 지금이라도 오면 알 수 있을 것이라며 말을 해 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책장구석에 있는 졸업앨범을 펼쳤다. 흑백사진 속에서 까까머리 남학생들이 눈에 힘을 가득 모아 나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입을 꼭 다물고 근엄한 표정들이 한결 같다. 남아(男兒) 열다섯에 못할 일이 무엇 있겠느냐는 표정이다. 나무에 기대어 교모(校帽)를 약간 삐뚤게 쓴 녀석도 정색이긴 마찬가지다. 산이라도 옮길 기세다. 동무들의 천진난만한 얼굴을 들여다보니 활짝 핀 나리꽃 같은 웃음이 절로 난다.

길모퉁이에 숨어 있다가 나에게 밤송이를 던졌던 진이일까. 염소주인 찬이는 아니겠지. 운동장에서 소리 지르는 염소를 쫓아내고 교실로 오다가 뒤에서 쫓아 온 염소에게 고무줄 바지가 벗겨졌던 동무였는데. 자전거를 타고 학교 앞 신작로를 씽씽 달리던 눈이 까만 국이와 운동장에 여학생들이 모아 둔 돌멩이를 리어카에 싣고 유난히 천천히 가던 형이도 있었지. 키가 작고 얼굴이 뽀얀 아이였는데…. 하얀 새 운동화에 몰래 검정색 물감을 뿌려 나를 몹시 속상하게 했던 녀석, 그 악동이 사십 년도 훌쩍 지난 지금에서야 자수를 하려고 행여나 전화한 건 아닐까. 장난꾸러기 동무들을 생각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하지만 앨범을 넘기며 주소록까지 살펴도 잃어버린 기억조각은 찾을 수가 없었다.

늦은 저녁, 전화기에 개똥이 또 나타났다. 이름을 꼭 알아내리라 마음을 먹고 전화를 받았다. 내 딴에는 머리를 썼다. “사실은 네 이름이 뱅글뱅글 도는데 말이 얼른 안 나오네.” 내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개똥이는 알고 소똥이는 모르느냐, 냉정하게 그럴 수 있느냐, 해도해도 너무하다며 넋두리까지 한다. 얄팍한 나의 전략은 한 방에 날아가고 말았다. 갈수록 태산이다. 소똥이는 또 누구란 말인가.

그래. 내가 나도 모르는데 내가 너를 어찌 알겠느냐고 했다. 통쾌하게 웃었다. 웃음소리가 마치 폭포수 같았다. 전화기에서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동무들이 나를 놀리면서 함께 즐기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동창회에 참석 하지 못한 나를 대상으로 동무들이 더 재미있어 하는구나, 여기니 비록 같은 자리에 있지는 않았지만 함께 있는 것 같았다. 나를 기억해주는 동무들이 있어 나는 행복하다.

이런저런 이유로 신명이 나지 않는 작금에 나를 한달음에 단발머리 소녀가 되어 깔깔거리며 웃을 수 있는 기회를 준 동무들이 고맙다. 그런데 걱정이다. 다음에는 꼭 이름을 불러달라고 한다. 끝내 이름을 밝히지 않은 동무. 대관절 `내다`는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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