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아무리 여측이심(如厠二心)이라지만

등록일 2016-08-17 02:01 게재일 2016-08-17 19면
스크랩버튼
▲ 김규태 동국대 교수·원자력에너지시스템공학과
“전쟁에서 가장 소름끼치는 일 중 하나는 전쟁 관련 선전, 절규, 거짓말, 증오 등 그 모든 것이 예외 없이 싸우지 않는 사람들에게서 비롯된다는 사실이다.”

1936년 조지 오웰이 스페인 내전 체험을 기록한`카탈루냐 찬가`의 이 대목은 시대를 초월한 인간의 위선과 탐욕을 고발한다. 프랑코 정권의 파시즘과 싸우겠다는 순수한 열정으로 스페인 내전에 참전한 조지 오웰은 파시즘 척결에 앞장설 것이라고 기대했던 공산주의에 대해 실망한다. 권력유지에 급급한 스탈린 체제에도 환멸을 느낀다. 그런 가운데서도 지독한 추위와 굶주림 속에서도 카탈루냐 공화파 군대가 끝내 지켜나갔던 선의에서 인간의 희망을 발견한다.

그로부터 80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총칼 대신 이해관계와 입장에 따라 각자의 전쟁을 치르고 산다. 상황에 따라 신념도 뒤집고 정확하지 않은 얘기도 사실로 호도하는 모습 또한 여전하다. 특히 정치권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여측이심(如厠二心)이라고, 아무리 뒷간에 갈 때 마음 다르고 나올 때 마음 다르다지만 책임 있는 자리에서 보일 모습은 아니다. 표 달라고 할 때와 당선 뒤 달라지는 모습뿐만 아니라, 조지 오웰의 언급처럼 싸우지 않은 채 싸움에 대해 얘기하는 모습은 전형적인 포퓰리즘이다.

월성원전 고준위방폐물 문제가 대표적이다. 가뜩이나 TK 지역의 여러 현안 때문에 들끓은 민심을 겨냥해서인지, 원자력발전 40여년 만에 처음으로 마련된 고준위방폐물 관리 정책을 철회하란다. 야당 탈핵모임 의원들의 주장이다. 우리 지역 여당의원들도 국민의 안전과 경제에 심대한 파장을 미칠 국가적 과제에 대해 명확한 의견표명을 하지 않거나, 원론적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모든 일에는 책임이 따른다. 세계의 원조를 받던 대한민국이 이젠 원조를 하는 나라가 된 것처럼, 원전수입국에서 자체 원자로를 개발한 세계 6위의 원전 운영국이 됐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원전가동에 따른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가장 민감한 문제인 고준위방폐물의 관리에 관한 정책도, 법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선진국에서 80년대부터 정책과 법적·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고 지역주민들과의 꾸준한 소통을 통해 갈등의 현장을 넘고 서로간의 신뢰를 구축해 온 것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그들은 갈등이라는 또 하나의 전쟁에서 정부와 국회, 지자체, 환경단체, 시민대표가 모두 주역으로 참여해 정책과 법 제도를 토대로 한 경기규칙을 만들었다. 원전지역의 특성이나 지자체의 상황에 따라 협상해야 할 조건이 상이하기에, 정책과 법으로 큰 틀의 방향을 정하고 상황에 맞는 그라운드 룰을 만든 것이다.

우리나라도 선진국과 비슷한 시기에 고준위방폐물 관리정책을 시작했지만, 극단적 갈등과 불신만 초래한 채 표류해왔다. 그러다 이번에 겨우 정부정책을 확정하고 관리 절차법을 입법예고한 것이다. 많이 늦었고 부족한 점이 많지만, 이제라도 결정하고 법적 절차를 밟았다는 사실 자체는 다행이라 여긴다. 무엇보다 소통을 강조하고 있는 점도 주목한다. 그러나 그 무엇도 주장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 법제화되지 않으면 국회나 지방의회 의견처럼 정부정책을 철회하면 지금까지 보낸 시간을 그대로 다시 보내야 한다. 특별법 18조를 근거로 빼 가기를 원하는 고준위 방폐물 또한 움직일 근거가 없다.

선출직 정치인들이 정말 국민의 안전을 원하고 고준위 방폐물 관리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면 무엇보다 법적·제도적 기반을 만드는데 주력해야 한다. 지금 이 시각에도 시간은 포화를 향해 가는데, 당장 해결해야 할 저장시설 해법 마련은 접어두고 정부를 질타하기만 한다고 어떤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지 묻고 싶다. 이제는 고준위방폐물 관리 해법 마련이라는 전쟁터에서 싸우는 사람들을 보고 싶다.

특별기고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