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참 좋은 세월이다. 칠곡군은 할머니들에게 한글을 가르쳐서 시인으로 만든다. 지난해에는 `시가 뭐고`란 시집을 펴내 6천500부나 팔렸다. 84명의 할머니들이 쓴 시 89편을 묶은 시집인데 당당히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 올 연말께 또 한 권이 나올 예정이다. 포도농사를 짓는 도필선 할매는 “포도알에서 ㅇ이 보이고, 이파리에서 ㅍ이 보인다”라 썼다. 조선시대 5살짜리가 오리를 보고 “물위에 누가 새乙자를 써두었나”라 읊었던 일이 연상된다. 강금연 할매는 “내 아들 나가 시끈 물도 안 내삐릴라 캐다/얼마나 좋아는데….”라 읊었다. 맞춤법 틀린 것이 무슨 상관, “아들 낳았다고 너무 좋아서 아이 씻은 물도 버리고 싶지 않았다”는 그 절창이 가슴을 울린다.
박후불 할매는 “마을회관 한글 공부/내 눈을 뜨게 하고/흐리게 보였던 간판이/환하게 보인다”라 썼다. 글을 모를때는 본척만척 지나갔던 간판이 이제 자세히 보인다는 뜻이니, “나는 이제 까막눈이 아니다”란 자부심이 행간에 묻어 있다. 남편을 일찍 보낸 곽두조 할머니는 “내 혼자 당신 새끼 다 키우고/내 혼자 눈물 반 콧물 반 그래 살았다/4남매 데리고/ 내 할 일 다 하고/ 인자는 나는 백만장자구나…” 갖은 풍상 골몰 다 잊고 이제 백만장자라는 긍정적 세계관, “곧 갈 것이니 쪼매만 기다리소” 죽음조차 `저승 남편 만나는 희망`으로 승화시키는 `생사 경계 없는 해탈`이 눈물겹다.
긴 세월 쌓아온 깨달음과 진심이 만나면 `감동`이 탄생한다.
/서동훈(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