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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곡 할매 시인들

서동훈(칼럼니스트)
등록일 2016-06-07 02:01 게재일 2016-06-07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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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는 “여자가 시를 지으면 팔자가 드세다”해서 꺼렸다. 황진이, 이매창, 이옥봉 등을 두고 하는 말이다. 허난설헌도 시를 짓는다는 이유로 혼인줄이 막힐 뻔하다가 `시를 버리겠다는 조건`으로 시집을 갔지만, 타고난 시재(詩才)를 억누를 수는 없는 일. 그녀는 몰래 시를 짓다가 발각돼서 엄청 구박을 당했다. 이옥봉도 소박맞고 친정에서도 쫓겨나자 “이 넓은 천지간에/ 이 작은 몸 하나 의탁할 곳 없으니/고기밥이나 되련다”란 절명시를 남기고 연못에 몸을 던졌다.

지금은 참 좋은 세월이다. 칠곡군은 할머니들에게 한글을 가르쳐서 시인으로 만든다. 지난해에는 `시가 뭐고`란 시집을 펴내 6천500부나 팔렸다. 84명의 할머니들이 쓴 시 89편을 묶은 시집인데 당당히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 올 연말께 또 한 권이 나올 예정이다. 포도농사를 짓는 도필선 할매는 “포도알에서 ㅇ이 보이고, 이파리에서 ㅍ이 보인다”라 썼다. 조선시대 5살짜리가 오리를 보고 “물위에 누가 새乙자를 써두었나”라 읊었던 일이 연상된다. 강금연 할매는 “내 아들 나가 시끈 물도 안 내삐릴라 캐다/얼마나 좋아는데….”라 읊었다. 맞춤법 틀린 것이 무슨 상관, “아들 낳았다고 너무 좋아서 아이 씻은 물도 버리고 싶지 않았다”는 그 절창이 가슴을 울린다.

박후불 할매는 “마을회관 한글 공부/내 눈을 뜨게 하고/흐리게 보였던 간판이/환하게 보인다”라 썼다. 글을 모를때는 본척만척 지나갔던 간판이 이제 자세히 보인다는 뜻이니, “나는 이제 까막눈이 아니다”란 자부심이 행간에 묻어 있다. 남편을 일찍 보낸 곽두조 할머니는 “내 혼자 당신 새끼 다 키우고/내 혼자 눈물 반 콧물 반 그래 살았다/4남매 데리고/ 내 할 일 다 하고/ 인자는 나는 백만장자구나…” 갖은 풍상 골몰 다 잊고 이제 백만장자라는 긍정적 세계관, “곧 갈 것이니 쪼매만 기다리소” 죽음조차 `저승 남편 만나는 희망`으로 승화시키는 `생사 경계 없는 해탈`이 눈물겹다.

긴 세월 쌓아온 깨달음과 진심이 만나면 `감동`이 탄생한다.

/서동훈(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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