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비정부기구 모임`은 1990년도에 성안됐다. 21세기로 넘어가는 `세기말 10년`에는 세계적으로 커다란 변화가 오는데, 이 시기에 `세계의 불평등 해소`를 위해 선진국들이 후진국들을 도와서 그 불평등을 줄여나가자는 취지의 공문을 유네스코가 각국에 보냈다.
당시 우리나라는 “아직 한국은 적극적으로 나설 능력이 없으니, 추세를 지켜보겠다”는 대답을 주었는데, 26년이 지난 지금 경주에서 `NGO 콘퍼런스`를 열게 된 것은 매우 감회 깊은 일이다.
이번 콘퍼런스는 주로 `개발도상국들의 교육`에 논의의 초점이 모아졌다. 우리나라도 경제적으로는 선진국 문턱에 들어섰지만, 교육에서는 여전히 19세기 프레임에 갇혀 있다. 인공지능(AI)시대에 암기력은 그리 중요한 능력이 아니지만 학교 교육은 여전히 `교과서 외우기`에 머물러 있고, 암기력 좋은 사람을 `머리 좋은 사람`이라 평가한다. AI시대에 인간이 인간다워질 방법은 `창의력·창작능력·인문학적 정서` 등이고, 암기력·분석력은 AI가 수 천배 뛰어나다.
`학교 교육`만 있고 `가정교육`과 `글로벌 교육`이 미미한 것도 한국교육의 후진성이다. 인격·인성은 주로 가정에서 길러진다. 세계가 국경 없는 시대로 진입했는데 아직 한국의 세계시민교육은 걸음마 단계이다.
결국 우리나라는 `국내용 교육`이라는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입시위주의 주입식 교육`에 너무 오래 머물러 있다는 뜻이다. 전국의 모든 학교들이 동일한 교과서를 가지고 `박제화된 지식`을 주입하니, 세계시민으로서의 자질을 갖출 기회가 없고, 창의적인 두뇌를 개발시켜 나갈 여지도 없다.
올해부터 중학교 자유학기제가 전면 시행되는데, `교실에서의 주입식 강의`에 너무 오래 길들여진 탓에 `걱정의 소리`도 적지 않다. “교과서 외울 귀한 시간에 무슨 뜬구름 잡는 교육이냐”는 것이다. `명문대학 입학`이 일생의 목표가 돼버린 교육 탓이다.
소득계층을 5단계로 나눴을때 상위계층과 하위계층의 사교육비 지출비율은 9:1이다. 엄청난 사교육비를 지불하면서 명문대에 가야 출세길이 열린다는 이 입시제도는 `유엔 NGO`가 다뤄야 할 `후진국의 교육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