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그래, 그런거야` 윤소이, 남편 혼외자 존재에 분노
“정말 몰랐어요. 세희의 충격은 바로 저의 충격이었죠. 배우가 뒷이야기를 미리 다 알면 너무 계산해서 연기하니까 안된다면서 안 가르쳐주셨거든요. 신혼 1년 차의 똑똑한 패션에디터이고 3남매의 장녀라는 정도만 알고 연기를 시작했어요.”
SBS TV 주말극 `그래, 그런거야`에서 평생 똑부러지는 인생을 살다 하루아침에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세희 역의 윤소이(31)는 이러한 제작진의 `배려`에 문제의 대본을 받았을 때 극중 인물인 세희와 일심동체가 됐다.
세희가 평생 단정하게 쌓아올린 세상이 한 번에 바닥까지 무너진 사건은 `그래, 그런거야`의 중요 동력 중 하나다. 액면 그대로만 보면 이 사건은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클리셰. 하지만 노회한 김수현 작가는 그 흔한 사건을 다르게 풀어내고 있다.
최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윤소이는 “그래서 어렵다”고 토로했다.
“요즘 세상에 이런 일이 있을까도 싶고, 세희처럼 이성적으로 냉정하게 대처할 수 있을까도 싶고 많이 혼란스러웠어요. 그래서 김수현 선생님께 여쭤보기까지 했죠. 선생님은 드라마를 자꾸 현실이라고 생각하지 말라고 하시더라고요. 현실과 비교하지도 말고, 다른 작품과도 비교하지 말라고 하셨죠. 선생님께서는 몇년 뒤 기억하지 못할 작품이 아니라, 계속 기억에 남을 이야기를 할 것이라고 하셨고 그렇기에 저 역시도 어디서 누군가 했던 연기가 아니라 저만의 연기를 해야한다고 하셨어요.”
`그래, 그런거야`에서 세희는 남편의 과거를 접한 후 폭발하지 않았다. 정반대로 심연으로 차분하게 가라앉았고 얼음처럼 차가워졌다. 남편에게 `변명`의 기회를 먼저 줬고, 고민 끝에 자신의 입장을 정리했다. 하지만 폭발은 그 뒤에 따라왔다. 이성으로 제어했다고 생각했지만, 불쑥불쑥 솟아오르는 분노로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몸부림친다.
윤소이는 “실제의 저라면 세희와 정반대로 했을 것이다. 일단 다 뒤집어엎었을 것이고 울고불고 난리친 후 그 다음에야 남편의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했을 것 같다”며 “하지만 김수현 선생님은 우리의 예상과 다르게 가시더라”고 말했다.
“그 사건이 터졌을 때 제 분량이 세 신에 하나 꼴로 감정 신이었는데, 주옥같은 대사가 많았죠. 2주 동안 아무도 안 만나고 대본만 파고 들었어요. 내가 매 작품 이렇게 연기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오랜만에 초심으로 돌아간 느낌이었죠. 고통스럽고 힘들었지만 고민하고 연구하면서 많이 배웠어요. 김수현 선생님 대본에는 20~30대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느낌이 많이 들어 있어요. 대본에 다 적혀 있는 것을 제대로 연기하기만 하면 되는데 그게 정말 어려웠던 거죠. 대본의 의미를 선배님들께 물어물어 찾아내고 배웠고, 해내고 나니 굉장히 뿌듯했어요.”
세희가 남편을 받아들이기로 하고, 남편의 아이도 낳겠다고 선언한 지금은 잠시 소강상태지만 안심할 수 없다. 남편의 고3 아들을 안 보고 살겠다던 세희가 그 아이를 찾아가 만나기 때문이다.
“역시 앞으로도 이야기가 어찌 전개될지 말씀을 안 해주셔서 저는 몰라요. 하지만 지금이 폭풍전야인 건 분명한 것 같아요. 먹구름이 서서히 몰려오는 느낌이에요.(웃음) 이제 절반이 왔는데 갈 길이 멀어요. 긴장하고 있어요. 또다시 감정 신이 몰아칠 것 같아요.”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 속 여성들은 늘 주체적이고 능동적이었다. 미혼모의 길을 선택한 판사부터, 친구의 남편과 불륜을 저지르는 여자도, 연하의 남성에 대시하는 여자도 모두 당당했다. `그래, 그런거야`의 세희가 구시대 신파의 주인공에 머물지 않을 것임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이미 상처는 받았으니 죽을 때까지 그 상처는 아물지 않을 것 같아요. 하지만 세희가 확실하고 분명하게 자신의 주관을 세우고 흔들리지 않고 그 길을 걸어나갈 것 같아요. 깨진 그릇이라고 버릴 것인지, 아니면 본드로 붙여서 계속 써볼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세희가 주변 눈치 안보고 다시 당찬 캐릭터로 거듭날 것이라고 믿습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