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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토학살의 결과

서동훈(칼럼니스트)
등록일 2016-04-28 02:01 게재일 2016-04-28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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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간토(關東·도쿄와 요코하마)지역에 대지진이 났다. 당시만 해도 일본인들은 무슨 변괴가 생기면 정부를 비난했다. 민심이 흉흉하자 일본정부는 그 분노를 재일 조선인들에 돌렸다. “조센진들이 우물에 독약을 타고 불을 놓는다” 헛소문을 퍼트렸고 경찰과 자경대들은 조선인을 보이는 족족 총을 쏘고 죽창으로 찔러 죽였다. 그 무렵 대구의 시인 이상화가 동경에서 불어 공부를 하고 있었다. 프랑스 유학을 위해서였다. 그가 자경대에 붙잡혔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그는 기지를 발휘했다. 일본에는 불교 신도들이 많은 것에 착안한 것.

“나는 불교 신도다. 당신들 중에도 불교도가 있을 것이다. 불교는 살생을 금한다. 나를 죽여 죄를 지으려는 것이냐”이 말에 자경대장의 눈이 번쩍했다. “나도 불교도다. 당신 얼굴을 보니 부처님 얼굴을 많이 닮았다. 당신을 죽일 수 없으니, 얼른 귀국하라. 여기는 매우 위험하다” “고맙다. 부처님이 당신의 자비를 아실 것이다” 이상화의 얼굴은 불상과 많이 닮아 있는데 그 얼굴 덕에 살았다.

귀국 후 그는 `개벽`지에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발표한다.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로 시작해서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로 끝나는 이 시는 `간토대학살의 산물`이다.

홍난파가 바이올린 곡 `봉선`을 쓴다. 일본 공장으로 간다는 동네 처녀 봉선과의 이별을 아쉬워하는 곡. 그때 시인 김형준이 이 곡을 듣고 “울밑에 선 봉선화야 네 모양이 처량하다”란 시를 짓는다. 곡이 먼저 나오고 노랫말이 나중 나온 경우. 이 가곡도 간토대지진으로 6천여 명의 한국인이 살해당한 후에 생산된 결과물이다.

일본의 양심 있는 시민단체 봉선회가 동경 북쪽을 흐르는 아라카와강변에 봉선화를 심었다. 관동대학살 희생자를 기리기 위함이라 한다. 교수, 목사, 재일 영화감독 등이 모여 8월 20일 서울광장에서 `간토학살 희생자 추모제`를 열기로 했다. `역사앞에 지은 죄`는 시효도 없고 용서도 없음을 증명한다.

/서동훈(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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