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공기에 목청이 트인 채소 장수 아주머니의 신바람 나는 노랫소리에 지나가던 손들이 몰린다. 감자, 오이 장사 아주머니도 곁에서 질세라 적재 칸에 올라 앉아 호객에 열을 올린다. 싱싱한 미주구리 파는 할머니의 손길은 이미 바빴다. 마디 굵은 손가락 사이로 집은 것의 반쯤은 흘러내리고 아슬아슬하게 걸린 두어 마리를 덤으로 주면서 덕담까지 건넨다.
“무 썰고 미역 좀 넣고 무쳐서 자셔 보라고, 내가 막 퍼 준다 아이가.“
어느 장사꾼한테서는 사람들이 물건을 잡아당기며 서로 사 가려고 한다. 손은 부지런히 놀리지만 말은 간간이 오갈 뿐이다. 양파가 불티가 난다. 물건 자랑을 떠벌리는 일도, 값을 흥정하는 일도 없다. 장사는 입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신용으로 하는 것임을 보여준다. 풋풋한 종대 끝에 달린 양파가 밭에서 금방 기어 나온 듯하다. 잘 생긴 놈은 말이 필요 없이 스스로 팔려 나간다.
보따리, 리어카 사이로 장세를 거두러 다니는 구청 직원의 발걸음이 분주하다. 노점 장세는 오백 원이었다. 봇짐장수에게는 밑천이 안 들어가니 결국 소비자에게 그만큼 덕인 셈이다. 물건 값에 가게 세나 인건비가 끼어들지 않기 때문이다.
할머니가 팔러온 시금장 단지 앞에 앉아 시금장 담는 특강을 들었다. 구수한 시금장만큼이나 깊은 맛 나는 할머니의 입담이 정겨웠다. 홀로 사시면서 별로 입 다실 일이 없으셨던지, 내가 잘 들어주자 할머니의 이야기가 봇물 터지듯 했다.
얼추 십여 분이나 고분고분하게 잘 들어줬다는 값어치로 마디 굵은 손가락에다 시금장을 쿡 찍어 내 입안에 쑤욱 넣어 주셨다. 토속적인 시금장 맛에다 할머니 손가락의 온기까지 빨고 있으니 문득 옛날 외할머니의 향수가 밀려와 시금장 먹은 속이 시큼했다.
어느덧 나는 외할머니의 추억에 젖어 있었다. 이럴 땐 할머니의 팔을 붙잡고 선술집으로 들어가 탁주 한 추발로 속을 헹궈내고 싶은 마음이 불현듯이 일었다.
시장은 우리 삶의 현주소이다. 우리의 정서와 문화가 스며들어 있다. 우리가 살아있다는 것을 체감하게도 한다. 성실히 살아가는 서민의 모습에서 희망을 느끼게 하는 곳이다. 그뿐인가. 시장은 소박한 인정이 남아 있는 곳이다. 콩나물 한 옴큼 쓱 집어서 덤으로 얹어 주는 것을 잊지 않는다. 풋고추 몇 개 더 주는 것이 인정이라면, 이것의 실천적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곳이다.
요즘 고급 백화점, 대형마트가 성황을 이루고 동네 재래시장이 죽어 간다고 한다. `편리함`에 대한 신드롬이다.
더운 날씨에 이 골목 저 골목 다닐 필요 없이 엘리베이터로 한꺼번에 해결된다. 한 곳에서 잡화를 구입할 수 있는 시간의 경제성도 있다. 하지만 비싼 땅, 고급 건물, 수많은 종업원 등은 소비자가 부담해야할 몫이다.
새벽 일찍 재래시장에 나가면 생산자로부터 농산물을 받을 수 있다. 밭에서 바로 거둬온, 숨 쉬는 채소들이다. 백화점처럼 비쌀 이유도 없다. 보관대에 넣어 두지 않아 위생을 염려할 필요는 더더욱 없다. 신선한 것을 싼 가격으로 준다는데 굳이 마트만을 고집할 필요가 있을까. 땀으로 키운 것을 돈으로 장사하려는 대형마트들. 노지에서 기른 것은 노지에서 사고파는, 인정이 풋풋한 사람살이를 느끼게 해 주는 재래시장을 그래서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