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박하고 듬직한 지기는 본래 떡메를 받쳐 주던 떡판이었습니다. 몇 손을 거쳐 어찌어찌하여 키 낮은 책상이 되어 저와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그의 가슴을 쓰다듬어 보면 감촉이 부드럽습니다. 넓은 가슴 펴고 있는 지기가 고향에서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상상의 날개를 펴 봅니다.
이제 지기는 저의 꿈을 이루어 주기 위해 오도카니 기다림의 날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기다림에 지쳐서 그리움이 번지듯 그는 갈빛으로 짙어지고 있습니다. 저의 슬픔도 기쁨도 다 알고 있다는 듯 은은한 빛으로 말을 건네옵니다.
그대여 저와 함께 밤마다 불을 밝히며 꿈꾸기를 그치지 마세요. 먼저 살다 간 이들이 속울음을 울면서 꿈을 이루지 않았습니까.
요절한 허난설헌, 사랑하는 이를 부르다 정신병동에서 사라진 까미 끌레유, 오직 진리만을 갈구하며 삶을 소진한 시몬느 베이유. 이들의 아픈 흔적들은 살펴보셨나요. 슬픔을 형상화시킨 자취가 아픔으로 전이(轉移)될 것 같아 되새겨 보고 싶지 않다고요.
`의유당 관북 유람 일기(意幽堂關北遊覽日記)`를 보셨나요. 의유당 김씨는 순조 29년(1829년)에 남편 이희찬이 함흥 판관으로 부임할 때 따라가서 그 부근의 명승 고적을 두루 다니며 쓴 기행문입니다. 조선의 현실에서 남편의 외방 임지에 아내가 따라갈 수는 없었지요. 잠영세가에서 더구나 범절과 덕행이 남다른 부인으로서는 흔하지 않은 일이지요. 한양에서 함흥까지 남편을 수행하고 게다가 명승지까지 여행한 그들 부부의 금실이 짐작이 되지 않습니까. 시대를 뛰어넘어 풍류를 즐긴 멋진 부부였나 봅니다. 북산루(北山樓) 기행은 여유로움에 취해 있는 듯합니다.
“풍류를 일시에 주하니 대모관 풍류라 소리 길고 화하야 가히 들음 즉하더라. 모든 기생은 쌍지어 대무하야 종일 놀고 날이 어두우니 돌아올 제 풍류를 교전에 길게 잡히고 청사초롱 수십 쌍을 고이 입은 기생이 쌍쌍히 돌고 섰으며 횃불은 관 하인이 수없이 들고나니 가마 속 밝기 낮 같으니 밖곁 광경이 호말을 헬지라 붉은 사에 푸른 사를 이어 초롱하였으니 그렇게 어룽지니 그런 장관이 없더라.”
의유당은 규중의 소녀자임을 잊고, 스스로를 승전하고 돌아온 장정으로 생각했다가 머리를 만지고 치마를 보고서야 아녀자임을 깨달았다고 하더군요. 남성 못지않은 호기와 인품에서 동시대의 여인들과는 거리가 먼 여유가 느껴지지 않습니까. 규방을 떨치고 나와 기생과 하인을 데리고 거기다 고을 원님의 호위까지 받으며 여행하였고, 뛰어난 문장을 남긴 의유당의 호방함이 부럽지 않은지요. 슬프도록 아름답게 살다 간 이들은 우리의 마음을 울려 주지만 대범하고 다복한 이들의 맥도 이어져야 하지 않을까요.
모처럼 마음이 풋풋해집니다. 이름을 남긴 이들의 발자취가 많은 이들의 가슴에서 가슴으로 전해져 한 떨기 별이 되어 빛나지 않겠습니까.
이름을 남기고 빼어난 문장을 남긴 이들의 자취도 빛나지만 지기가 살아온 모습에 더욱 눈물이 날 것 같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많은 생명들을 거느리며 키워 온 당신의 생애는 더없이 순결합니다. 그대는 혼신을 다해 식솔들의 양식이 되었고 포근히 감싸 주었습니다. 이제는 더 맑은 눈빛을 간직하도록 저를 이끌어 주고 있습니다.
갈색 빛을 띄우며 이렇게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 마음이 넉넉해집니다. 언제나 엷은 미소를 머금고 저의 주위를 말없이 살펴보렵니다. 그대의 얼굴에 언제나 윤기가 어리도록 애써 보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