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30돌 맞는 이승철, 내달부터 `더 베스트 라이브` 투어
보컬을 흉내 낼 `히든 싱어`들을 찾기 어려운 `원조 음색깡패`이고, 공연 횟수도 센 것만 2천여 회다. LP와 카세트테이프·CD·음원 시대를 관통하며 정규 앨범 12장을 포함 지금껏 22장의 앨범을 냈고 270여 곡을 발표했다. 솔로 앨범 총 판매량은 아무리 못해도 800만장을 넘겼고, 부활 시절까지 포함하면 1천만장 가량 된다.
지금은 턱선이 둥글어졌지만 짙은 쌍꺼풀의 꽃미남 외모도 인기에 한몫했다.
`희야~ 날 좀 바라봐~`
그가 눈을 감고 `희야`의 한 소절만 토해내도 팬들은 숨을 죽였다. 밴드의 보컬로 출발한 그는 지금의 스타급 아이돌에 비견되는 인기를 누렸다. 요즘의 10~20대가 그를 소녀시대란 팀명과 동명곡을 부른 가수, 엠넷 `슈퍼스타 K` 심사위원 정도로 안다면 드라마 `응답하라 1988` 세대에겐 섭섭할 일이다.
그러나 부활 2집 이후 1989년 솔로로 나선 그는 대마초 입건과 5년의 방송정지, 첫 결혼 실패 등 사생활로 인한 부침도 있었다. 그때마다 그는 재기에 성공하며 부활했고 지금도 후배들에게 `리스펙트` 받는 현역이다.
특히 그는 2007년 가정을 꾸리고는 인생 행보에 변화를 보였다. 아프리카 차드에 학교를 짓는 등 꾸준히 나눔을 실천하고, 재소자 합창단을 지휘하고, 탈북 청년들과 독도에서 통일송을 발표하는 등 시야를 넓혔다.
최근 용산구 한남동에서 만난 이승철은 평소 성격처럼 지난 시간의 껄끄러운 얘기까지 막힘없이, 가감 없이 들려줬다.
다음은 일문일답.
- 가정을 꾸리며 전환점이 된 듯하다.
◆ 내게 결혼은 `퍼펙트`한 선택이었다. 음악 하는 사람은 결혼에 두려움이 있다. 창작의 막힘, 영감과 행동의 제약이 생길까 봐. 그런데 난 결혼 후 안정된 환경 속에서 히트곡을 냈고 아내(박현정 씨)의 조언 덕에 나누고 봉사하는 기쁨도 알게 됐다. 올해 딸 원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갔는데 아이가 커가는 행복도 엄청나다. 가정이 길을 만들어줬다면 종교가 방향을 설정해줬다.
- 원래 불교신자였는데 지금은 크리스천이다.
◆ 지방 공연 때면 꼭 인근 절을 찾는 불교신자였다. 그런데 꿈에서 마리아를 세 번 만난 후 2년가량 성당에 다녔고 지금은 크리스천이 됐다. 목사님 말씀을 듣고 찬양송을 부르는데 소름이 돋더라. 이후 공연하는 이유와 방향도 달라졌다. 예전엔 가수란 본분만을 위해 무대에 섰다면, 지금은 공연 수익을 아프리카 차드에 10년간 10개 학교를 짓는데 기부하고 있어 또 다른 목적과 책임감이 생겼다. 지금까지 그곳에 5개 학교를 지었다.
- 뜻을 실천할 수 있는 건 건재함 덕이다. 개성 강한 보컬과 히트곡의 힘인가.
◆ 음색을 포함한 스타성, 팬들이 믿고 듣는 노래, 타고난 운명이 있어야 `롱런`할 수 있다. 노래는 팬들의 믿음이 중요한 것 같다. 그 믿음 속에서 실망시키지 않는 새로운 노래가 나와야 한다. 난 팝, 록, 발라드 등 다양한 장르를 시도했고 그 다양성이 조화를 이뤘다. 또 운명적으로 좋은 음악을 만났다. 가장 존경하는 선배가 조용필 형인데 노래, 시대적 분위기, 타고난 운명을 봤을 때 최고다. 형처럼 50년 그 자리에 있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2년 전에는 `헬로`와 `바운스`로 아이돌 못지않은 사랑을 받으셨다. 가수로서 형의 타고난 운명은 정말 부럽다.
- 지난 30년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과 인생 한곡은.
◆ 여의도 63빌딩에서의 부활 첫 콘서트, `안녕이라고 말하지마`로 데뷔했을 때, 올림픽주경기장에서 열린 25주년 공연이 기억에 남는다. 특히 솔로 데뷔 무대가 맨땅의 헤딩이었으니 가장 긴장됐다. 노래는 `희야`, `안녕이라고 말하지마` 등 한 곡을 꼽기 어렵다. 인생에 굴곡이 많아 재기곡이 많다. 범국민적으로 불린 건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 같다.
- 내달부터 26곡을 엄선한 `더 베스트 라이브` 투어가 시작된다.
◆ 다음 달 일산, 부산, 광주, 서울, 인천 등지를 돌아 내년 캐나다, 호주 등 해외로도 이어진다. 내년 5월에는 30주년 공연을 펼칠 계획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