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 잘 부르는 사람을 카나리아에 비한다. 뒤집어 말하면 카나리아 목소리가 그만큼 곱다는 말일 것이다. 아침 햇살이 퍼질 때 침대에서 듣는 새소리를 상상하며 카나리아 한 쌍을 샀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인가. 바이올린 선율보다 곱고 아름다운 노래를 기다렸는데, 눈만 말똥말똥 거리며 쳐다보기만 한다. 낯선 환경 탓인가 싶어 며칠 두고 보기로 했다. 기다린 보람도 없이 한 달이 지나도 벙어리 행세다. 울지 않는다는 암컷만 두 마리 산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중저음으로 맑고 투명한 소리를 내는 롤러 카나리아를 살 걸 그랬나. 살짝 후회도 되었다.
사람도 기분이 좋아야 흥얼거리거나 노래를 부른다. 좁은 조롱에 갇혀 있으니 스트레스를 어찌 안 받겠는가. 베란다를 똥밭으로 만든다며 반대하는 식구들을 뒤로하고 풀어주었다. 조롱에는 먹이를 먹을 때나 목욕할 때만 들어가고, 분재들 사이로 왕복 달리기를 하듯 이쪽저쪽으로 분주하게 날아다녔다. 날이 갈수록 참기름을 바른 듯 깃털은 윤기가 나고 눈도 더 초롱초롱해졌다. 어느 날부터 참새처럼 “짹”하고 단조 음을 내면서 암컷의 꽁무니를 따라다녔다. 그러나 노래를 못하는 놈이라고 무시하는지 암컷은 본 척도 않는다.
“너 인마. 카나리아 맞아. 왜 노래를 못해. 마누라와 떨어져 살래?” 암수가 같이 있으면 울지 않을 수 있다는 말에 수시로 으름장을 놓았다. 그날도 새장 청소하면서 잔소리를 늘어놓다 갑자기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중학교 다닐 때 성악시험 치던 순간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반 아이들 한 명씩 앞으로 나가 주어진 곡 `금발의 제니`를 불렀다. 워낙 소심하고 부끄러움이 많던 나는 교단에 서고 보니 멀미가 나는 듯 속이 울렁거렸다. 여러 사람 앞에 서 본적이 별로 없는데다 노래까지 하려니 오죽했을까. 반주에 맞추어 노래를 시작하자 바로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음치란 몇 백 명 중 한 명 있을까 말까 한데 바로 너로구나.” 순간, 반 친구들이 책상을 치며 뒤로 넘어가는 시늉까지 하는 바람에 교실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상위권을 유지하던 성적이 성악시험으로 추락해 버린 것만큼 자존심을 건드린 상처는 깊었다.
그 후 친구들이 비웃을까 겁이 나서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음악 시간이면 친구들이 노래할 때마다 죄 없는 입술만 피가 나도록 물어뜯었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했던가.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보니 음악 선생도 그 학교로 전근을 왔다. 복도에서 서로 마주쳤을 때 먼저 나를 아는체했다.
“너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네. 이름이 뭐니?”
내가 어물거리는 사이에 무슨 큰 발견이라도 한 듯이 박장대소를 하면서
“아. 맞아. 음치.”
음악 선생은 늦은 확인사살까지 날렸다.
학교를 졸업하고 많은 세월이 흘렀다. 음악 선생도 잊고 그때 기억도 퇴색되어 희미하다. 그런데 노래를 부르려면 장벽 앞에 선 것처럼 먼저 가슴이 답답해 왔다. 직장에서 회식하고 2차로 노래방에 간다 하면 약속을 들먹거리며 엉덩이를 뺄 수밖에 없었다.
누가 머리 나쁜 사람을 새대가리라고 하는가. 음치라는 말 한마디에 노래와는 담을 쌓고 사는 나와는 달리 녀석은 발성연습에 몰입했다. 평소에 높은 곳을 좋아해 빨래 건조대라든가 창틀 꼭대기에 즐겨 앉더니 조롱에 틀어박혔다. 땅거미가 내리기도 전에 자는 녀석이 새벽부터 어둑어둑할 때까지 끊임없이 목청을 돋우었다. 득음을 위해 폭포나 동굴 속에서 고된 수련을 하는 소리꾼이 따로 없다. 드디어 “삐리리릭 삐리리릭 쪼르록” 은쟁반에 옥구슬 굴러가는 정도는 아니지만 예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카나리아는 목을 한껏 부풀리며 노래를 한다. 폼이야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고고한 분위기를 풍기는 명창이다. 자기 목소리가 별로인 것은 안중에도 없이 자아도취에 빠진 수컷 옆에 언제 사랑을 나누었는지 암컷이 알을 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