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차 대전 후 희망을 잃고 맥 풀려 있는 유럽 국민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어주는 곡을 이들 음악가들이 만들었다. 전쟁이 없는 시대에도 이 군악대는 오케스트라와 협연도 하고, 외국 원정도 다니며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데, 이번 경주 `실크로드 2015`에 와서 `원조 군악대`의 위용을 과시했다.
동티모르는 포르투갈의 식민지로 살다가 1975년 독립했지만 9일만에 인도네시아 수하르토 정권의 침공을 받아 다시 25년간 압제를 받은 불운의 나라이다. 2002년 우리나라에서 월드컵이 열렸고, 한국이 4강에 오르는 기적같은 일이 벌어지던 해에 동티모르도 독립해 나라꼴을 제대로 갖추었다. 그리고 노벨평화상 수상자를 내기도 했다. 외교장관과 총리를 거쳐 2대 대통령으로 5년간 나라를 이끈 라모스 오르타. 그는`동티모르 독립의 아버지`로 추앙받는다.
한국은 `동티모르 군악대의 스승`이다. 기타줄을 퉁겨보거나 북을 쳐본 일 말고는 악기를 접해본 경험이 없는 군인들로`왕초보 군악대`를 만든 후 한국에 보내 교육을 시킨 것. 악기도 처음 만져보고 `콩나물 대가리 악보`도 처음 보고, 말도 안 통하는 군인들이 오직 `음악에 대한 열정` 하나만 들고온 것이다. 매일 코피 터지는 강행군이 이어졌고, 40일만에 비로소 4개의 곡을 연주할 수 있게 됐다. 국가, 순군선열 묵념곡, 동티모르 독립군가, 그리고 아리랑이다. 이 군악대는 28일 국가기념일에 `첫선`을 보일 것이다.
1901년 2월 고종황제는 독일인 군악교사 에케르트를 초빙해 서양식 군악대를 처음 만들었다. 나팔수와 고수(鼓手) 32명이 중심이었다. 그랬던 우리 군악이 이제 남의 스승이 되었다.
/서동훈(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