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상식 동안 두산 우승 축하
류중일(52) 삼성 라이온즈 감독과 선수들은 기꺼이 그 `고통`을 감수했다.
류 감독과 삼성 선수들이 두산 베어스의 시상식이 열리는 동안 3루쪽에 도열해 박수를 치는 모습은 슬프지만, 아름다웠다.
10월 31일 서울시 잠실구장에서 열린 한국시리즈 5차전. 삼성은 두산에 2-13으로 완패했다.
그대로 한국시리즈는 막을 내렸다. 2011~2014년 4년 연속 정규시즌·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하고, 올해 정규시즌에도 정상에 올랐던 삼성이 시리즈 전적 1승 4패로 패자가 됐다. 삼성 시대도 막을 내렸다.
인터뷰실에 들어선 류 감독은 “우리가 완패했다”고 패배를 깨끗하게 시인했다.
그리고 “저, 두산 축하하러 가야 합니다”라고 급하게 인터뷰실을 나섰다.
패장 인터뷰는 이날 삼성이 소화해야 할 마지막 공식 행사였다.
모두가 류 감독과 삼성 선수들이 조용히 야구장을 빠져나갈 것을 예상했다.
그러나 류 감독은 다시 더그아웃으로 돌아갔고, 더그아웃 안에서 두산의 세리머니를 지켜보던 삼성 선수들이 앞으로 걸어나가 도열했다.
이후 한국시리즈 공식 시상식이 열렸다.
구본능 KBO 총재가 두산 선수와 코칭스태프에게 우승 목걸이를 전달했다. 두산 선수단은 한국시리즈 우승 트로피를 번쩍 들었고, 감독상을 받은 김태형 두산 감독은 선수들의 샴페인 세례에 온몸이 젖었다.
류 감독과 삼성 선수들은 공식 시상식이 열린 20분 동안 자리를 지켰다.
우승팀 두산 베어스를 진정한 주인공으로 만들어주려는 배려였다.
한국프로야구는 2000년대 초반까지 한국시리즈 종료 후 2위 팀도 시상을 했다.
하지만 시상식을 위해 한국시리즈 우승팀의 세리머니를 지켜봐야 하는 2위 팀의 괴로움을 고려해 1위 팀만 시상식에 참석하기로 규정을 바꿨다.
그러나 류 감독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는데, 나는 우리 팀이 한국시리즈에서 패하면 공식 시상식이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키고 상대팀을 축하할 생각이다. 얼마나 멋지겠나”라고 말했다.
2011년 삼성은 아시아시리즈에서 일본시리즈 우승팀 소프트뱅크 호크스를 누르고 정상에 올랐다. 당시 소프트뱅크는 더그아웃 앞에 도열해 삼성의 아시아시리즈 우승을 축하했다.
류 감독은 “정말 멋졌다. 눈물이 날 정도로 고마웠다”고 했다.
통합 5연패 달성은 눈앞에서 놓친 날에도 류 감독은 2011년 가을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리고 선수단에 “축하해주고 가자”고 했다.
류 감독과 선수들에겐 무척 괴로운 20분이었을 터다. 4년 동안 세리머니의 주인공이었던 선수들이라 고통이 더 클 수도 있다.
하지만 선수들도 류 감독의 뜻에 따라 두산의 우승을 박수로 축하했다. 류 감독의 생각처럼 `멋진 장면`이었다.
류 감독은 공식 시상식이 끝나고서 김태형 감독에게 축하 악수를 청한 뒤에야 잠실야구장을 떠났다.
이런 삼성의 모습에 두산도 감동했다.
두산 관계자는 “나는 10월 31일에 두 번 눈물을 흘렸다. 우승을 확정한 순간과 시상식에 삼성 선수들이 도열한 모습을 보고…”라며 삼성 선수단에 감사 인사를 했다.
삼성은 홈 대구구장에서 한국시리즈 1, 2차전을 치를 때도 두산을 배려했다. 당시 전광판에는 삼성이 2012년 SK 와이번스, 2014년 넥센 히어로즈를 누르고 우승하는 장면이 담긴 영상이 흘렀다.
2013년 두산을 꺾고 한국시리즈 트로피를 드는 장면은 뺐다. 상대를 자극하지 않으려는 깊은 뜻이 담긴 결정이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