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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서 대가야 가마군 확인

전병휴기자
등록일 2015-10-07 02:01 게재일 2015-10-07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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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기·금속류 등 유물 182점 출토<BR>지역 토기생산 사례 최초 확인
▲ 고령군 쌍림면 송림리 대가야 토기가마유적지 2호에서 출토된 유물들.

【고령】 고령군 쌍림면 송림리 대가야 토기가마의 보존 정비를 위해 (재)영남문화재연구원(원장 박승규)에 의뢰해 발굴조사 한 `고령 송림리 대가야 토기가마유적 학술발굴조사`에서 삼국시대 대가야 토기조업이 이뤄진 가마군이 확인됐다. 유적에서 확인된 유구는 대가야 토기가마 3기와 폐기장 3기, 조선시대 토광묘 1기 등 총 7기이며 유물은 토기류 170점, 금속류 12점 등 총 182점이 출토됐다. 유적에서 조사된 토기가마는 총 3기로 모두 등고선과 직교되게 축조됐다. 아궁이는 지형상 낮은 남쪽에 두었다. 가마의 평면형태는 장방형에 가까우며 가마의 축조시 굴착이 용이한 기반층에 조성되어 있었다. 규모는 3호를 제외하고 길이 520~560㎝, 너비 120~160㎝, 잔존깊이는 20~60㎝ 정도이다. 소성부 내부에 함몰된 벽체편과 천장편에서 식물성 부재가 섞여 있고 가마의 일부가 지상에 드러나는 반지하식의 구조로 보여진다.

내부 바닥시설은 연소부와 소성부에 낮은 단이 형성된 유계무단식 구조로 보여지며 3호는 연소부에 타원형 수혈이 확인되었다. 이는 가마 내부에서 소성하는 주력제품의 차이로 보여진다. 1·2호 가마에서는 塼(전돌)을, 3호 가마에서는 대호(큰 항아리)를 토기와 함께 소성한 것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가마의 구조 및 출토유물을 통해 볼 때 삼국시대의 5세기 후엽~6세기 전엽 사이에 조업이 집중되었던 것으로 추정됐다.

이번 발굴조사를 통해 고령 지산동고분군 등에 공급하였던 생산유적 토기가마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었고 대가야 궁성지 등에서 수습된 전이 실제로 이곳 고령에서 생산되었음을 확인한 첫 번째 사례로 학술적인 가치가 매우 높은 것으로 평가됐다.

/전병휴기자 kr5853@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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