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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은 가는 게 아니고 자꾸 오는 것이었다 ― 토산못 이야기

등록일 2015-09-11 02:01 게재일 2015-09-11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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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경희수필가·경일대 외래교수
토산못에 노을이 내려앉는다. 못둑 너머로 보이는 서녘 하늘에 한 무리의 새떼가 날아간다. 흑백으로 떠오르는 토산못의 풍경은 내 무의식과 육체에 깃들어 있다가 미명 속에서 하나둘씩 형체를 드러내는 물체처럼 되살아난다. 실체가 없는 그림자를 좇아가듯 나를 찾아 나선다. 토산못은 내 생의 수원지 혹은 뿌리의 은유와 같은 공간이니까. 못둑에 도열해 있던 큰 나무가 환영처럼 떠오른다. 작은 여자아이가 단발머리를 나풀거리며 동무와 같이 못둑을 걸어간다. 이 못에서 멱을 감고 스케이트를 타던 아이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내 의식 속 유년기의 공간은 빛나는 폐허다. 생의 기저를 이룬 공간에 대한 천착은 파편화된 시간에 대한 복원작업이다. 시간에 매몰된 기억을 하나씩 건져 올려 꿰매고 연결하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최근이다. `옛날은 가는 게 아니고 자꾸 오는 것`이라는 시구를 발견하던 시점부터다. 솔직히 몇 년 동안 낡은 언어와 진부한 감상이 직조된 회고조의 글쓰기에 조금 질려있던 참이다. 하지만 나도 늙음을 향해 간다는 자각은 냉혹한 진실이 아니던가. 생의 비등점에서 끓어오르는 비애가 목까지 차오르면 유년기의 고향을 떠올린다. 그곳은 무쇠 난로의 온기처럼 따스하다.

토산못은 내 고향 경산 진량에 있는 저수지다. 큰 강을 모태로 두지 못한 대지는 늘 물이 귀했다. 게다가 지층이 청석이라 물을 오래 머금지 못하고 흘려보낼 수밖에 없다. 토산못은 대구 근교의 낚시터로도 유명했지만, 마을 사람들에게는 논에 필요한 물을 대는 중요한 수원지였다. 그뿐만 아니라 마을 아낙들의 빨래터였으며, 아이들의 놀이터였다. 지금은 일부가 매립되어 예전보다 크기가 줄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마을 앞산에 골프장이 들어서기 전까지 토산못에는 가시연꽃, 물밤, 말나물 등이 자랄 정도로 맑은 물이 그득했다. 못둑에는 아름드리 물버드나무가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했고, 마을 사람들에게는 중요한 삶의 터전이었던 셈이다.

바다를 처음 본 것이 초등학교 6학년 수학여행 때였다. 그때까지 토산못이 내게는 세상에서 가장 큰 바다였다. 억울하게 죽은 아기 귀신이 다른 아이를 잡아간다는 속설이 난무하던 시절, 토산못에는 익사사고가 잦았다. 여름 방학과 얼음이 녹을 무렵 동네 아이가 한 명씩못에 빠져 죽었다. 그래서 어머니는 자식들을 별나게 단속했다. 무더운 여름날이면 동네 아이들은 낡은 팬티만 걸치고 토산못으로 뛰어들었다. 세숫대야를 앞에 쥐고`쫑대`라 부르는 보 근처에서 헤엄을 치면서 놀았다. 겁이 많았던 나는 나무 그늘에 앉아 줄지어 기어가는 개미를 바라보거나 그것도 심심하면 풀각시 놀이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봄볕이 도타워지면 못둑에 연둣빛 풀이 돋아났다. 놀다가 배가 고픈 아이들은 간식으로 삐삐순(삘기순)을 뽑아 먹었다. 피막을 까면 나오는 연한 새순을 먹으면 단맛이 났다. 삐삐순이나 찔래순을 먹고 나면 입안에 풀 향기가 가득했다. 초여름 손이 미처 닿지 못하는 풀숲에 숨어있던 산딸기를 향한 유혹은 얼마나 강렬하던가. 성장기의 공간과 그 공간에서 만난 몇 개의 풍경은 흩어진 기억들을 모아 입체적으로 복원시켜 준다. 그 첫 번째 공간이 토산못이다. 다행스럽게도 토산못은 아직도 고향에 남아 있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토산못의 풍경은 변했다. 가장 안타깝고 아쉬운 것이 못둑의 나무들이 모두 사라진 것이다. 그 나무가 만들어주던 그늘의 넉넉함과 그 사이를 불어오던 바람의 결은 아직도 생생한데 말이다.

본래 생이란 사막을 걸어가는 낙타의 보행처럼 지난하고 완강하지 않던가. 그 길에서 가끔 돌아보는 유년의 시공간은 생생하고도 아련하다. 유년기는 식물성의 시간이다. 경쟁이나 생존의 절박함이 없는 무균실과 같은 시간이기에 순결한 자연의 나를 만날 수 있다. 존재와 공간은 운명적으로 엮어진다. 그 공간에 피어나던 작은 풀꽃 같던 아이가 자라 어른이 되고, 늙어간다는 사실은 슬픈 진실이다.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은 쓸쓸하지만 감미롭다. 실존적 삶에 매장당한 기억과 공간을 탐사하는 일은 미래의 나를 맞이하는 준비이기도 하다. 옛날은 가는 것이 아니라 자꾸 오는 것이기에.

※에세이 제목 `옛날은 가는 게 아니고 자꾸 오는 것이었다`는 이문재의 시 `소금창고`에서 따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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