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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어사 동종(銅鐘)의 비밀

등록일 2015-07-31 02:01 게재일 2015-07-31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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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진<br /><br />포항시 축제위원
▲ 조진 포항시 축제위원

어느 날 신라 천년고찰 오어사에 있던 동종(銅鐘)이 사라졌다.

포항시 오천 항사리에 있는 오어사는 신라 진평왕 7년(585년)에 자장율사에 의해 지어지고 원래 이름이 항사사(恒沙寺)로 불렸다고 한다.

신라의 고승 원효와 혜공이 수도를 하다가 법력으로 개천의 고기를 잡아먹고 생환토록 하는 시합을 했는데, 두 마리 중 한 마리가 살아 힘차게 헤엄을 치자 이 고기가 서로 자신이 살린 고기라해 내(吾) 고기(魚)`, 오어사로 불렀다고 전한다.

이후 고려시대 팔공산 동화사에서 만든 동종이 오어사에 설치됐는데 이 종이 갑자기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런데 1995년 11월 오어지 상류 준설작업을 하던 굴착기 기사가 이 동종을 발견했다. 문화재청에서는 이 종이 고려시대 동종임을 확인하고 1998년 보물 제1280호로 지정했다.

무릇 종(鐘)이라고 하면 악종(樂鐘), 시종(時鐘), 경종(警鐘), 범종(梵鐘) 등 그 범위가 넓다. 그 중 민족문화의 소산물로 종을 일컬을 때는 범종을 말한다. 우리나라 범종은 크기와 모양이 일정하지 않으나 신라종이 으뜸이다. 종의 맨 아래 몸체는 상대(上臺)·중대(中臺)·하대(下臺)로 구분되고 이들 사이로 유곽(乳廓)과 당좌(撞座)를 배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지금 오어사 유물전시관에 전시 중인 동종 원형에 대하여 안내 표지판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이 종은 신라 범종의 전통을 잘 계승하고 있고, 명문(銘文)에는 고려 고종(高宗) 3년(1216년)이라는 조성연대와 종을 만든 책임자인 대구(大邱) 동화사(桐華寺) 순성대사(淳誠大師) 및 주조 기술자인 대장(大匠) 순광(順光)의 이름까지 남아 있다. 종의 표면에는 보살(菩薩) 모양의 천의(天衣) 자락을 휘날리는 비천상(飛天像)을 비롯한 섬세한 문양 등 뛰어난 조형미를 자랑하는 고려 동종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1995년 11월에 절 앞 저수지공사 도중 발견되었는데 보존상태가 양호하며 출토된 후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에서 보존처리과정을 거친 후 1997년 7월에 오어사로 돌아왔다.

동화사에서 순성대사를 도감(都監)으로 해 사부대중(四部大衆)의 힘을 모아 300근(斤)의 청동으로 대장 순광이 만들어 1216년 5월 오어사에 달았던 동종이 어떻게 1995년 11월 오어지 못 바닥에서 발견되었을까.

길게는 700여년 간 동종이 사라진 비밀은 무엇일까. 아직 여기에 대해 아무런 기록이나 자료는 밝혀진 게 없는 것 같다.

단지 1736년(영조12년) 오어사가 소실(燒失)되고 1742년(영조18년) 중수(重修)했다는 기록이 있고, 1961년 오어사 앞 계곡을 막아 오어저수지를 조성했다는 사실은 확인할 수 있다. 현재 오어지는 상수원과 농업용수로 인근 지역에 소중하게 이용되고 있다. 오어사 동종이 얼마나 오래 저수지 바닥에 묻혀 있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1995년 늦가을에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 숱한 인고(忍苦)의 세월을 견뎌냈을 것이다.

높이 96㎝로 큰 편은 아니지만 아름다운 보물 오어사 동종. 깊고 컴컴한 저수지 바닥에 누워 이 세상의 빛 속으로 다시 환생하기 까지 전생(前生)과도 같은 긴 시간을 온 중생의 고통과 번뇌를 온 몸으로 받아들이며 고행, 수행의 삶을 살아 왔을 터. 오어사와 원효암(元曉庵), 자장암(慈藏庵)을 찾아오는 불자(佛子)들과 운제산(雲梯山)을 오르내리는 등반객 등 수많은 중생들을 수호하면서 침묵의 피안(彼岸) 세계에 깊이 잠들어 있었으리라.

오어지 주변의 사찰 스님들과 불자들의 깊은 신심과 공덕이 켜켜이 쌓여 수백년 연못 속에 잠겨있었던 동종이 드디어 바깥의 광명세계(光明世界)로 다시 찾아온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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