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인들은 구속에서 풀려났고, 벌금형을 선고받았는데, 이병철도 103억400만환의 처벌을 받았다. 이 회장은 다시 박정희에게 건의했다. “현금 대신 그 벌금으로 공장을 지어 그 주식을 정부에 납부하면 어떻겠습니까?” 이 제안도 최고회의 의결을 거쳐 `투자명령`이라는 좀 이상한 법령으로 실현되었다. 정치와 경제가 유착관계에 빠진다 해서 다 잘못된 것은 아니고, 타협에 의해 바람직한 방향으로 선회될 수 있는 사례였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행보가 바로 전형적인 정·경 유착이었다. 자기 자신은 5만원짜리 양복을 입으며, 가난했던 청소년시절의 검약정신이 체질화됐지만, 사업에 도움이 될 정권실세들에게 집어주는 돈에는 인색하지 않았다. `성완종 다이어리`에 오른 국회의원만 220명이나 되고, 그 힘에 의해 국회의원을 지내기도 했으며,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일원이 되기도 했다. 참여정부 시절에 무려 두 차례나 특별사면을 받은 것은 극히 예외적인 일인데, 그 또한 돈의 힘일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아무리 `돈 안 쓰는 정치`를 외쳐보지만, 우리나라처럼 `청렴도 하위권`국가에서는 공허한 메아리조차 돌아오지 않는 헛구호다. 성 전 회장의 장례식에 온 의원은 20여명에 불과하고, 권력자들은 “그 사람 잘 모른다”며 도망갈 개구멍만 찾는다. 온 나라가 공황에 빠져 있지만, 이 일을 계기로 비정상이 정상으로 돌아올 수만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전화위복이 아니겠는가.
/서동훈(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