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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政經)의 고리

서동훈(칼럼니스트)
등록일 2015-04-27 02:01 게재일 2015-04-27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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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6월 이병철 삼성 회장은 박정희 최고회의 부의장을 만났다. 당시 여러 경제인들이 부정축재자로 몰려 구속돼 있었다. 이 회장은 이렇게 설득했다. “경제인들이 탈세와 부정축재자로 몰린 것은 비합리적인 세율 때문입니다. 경제인들을 처벌하면 경제가 위축되고 세수가 줄어 국가 운영이 타격을 받습니다. 이들에게 경제건설의 역할을 맡기면 어떨까요” “그것은 국민이 납득하지 않을 겁니다” “국가를 위해 필요하다면 국민을 납득시키는 것이 바로 정치 아니겠습니까” 이 말에 박정희는 미소를 지었다.

경제인들은 구속에서 풀려났고, 벌금형을 선고받았는데, 이병철도 103억400만환의 처벌을 받았다. 이 회장은 다시 박정희에게 건의했다. “현금 대신 그 벌금으로 공장을 지어 그 주식을 정부에 납부하면 어떻겠습니까?” 이 제안도 최고회의 의결을 거쳐 `투자명령`이라는 좀 이상한 법령으로 실현되었다. 정치와 경제가 유착관계에 빠진다 해서 다 잘못된 것은 아니고, 타협에 의해 바람직한 방향으로 선회될 수 있는 사례였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행보가 바로 전형적인 정·경 유착이었다. 자기 자신은 5만원짜리 양복을 입으며, 가난했던 청소년시절의 검약정신이 체질화됐지만, 사업에 도움이 될 정권실세들에게 집어주는 돈에는 인색하지 않았다. `성완종 다이어리`에 오른 국회의원만 220명이나 되고, 그 힘에 의해 국회의원을 지내기도 했으며,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일원이 되기도 했다. 참여정부 시절에 무려 두 차례나 특별사면을 받은 것은 극히 예외적인 일인데, 그 또한 돈의 힘일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아무리 `돈 안 쓰는 정치`를 외쳐보지만, 우리나라처럼 `청렴도 하위권`국가에서는 공허한 메아리조차 돌아오지 않는 헛구호다. 성 전 회장의 장례식에 온 의원은 20여명에 불과하고, 권력자들은 “그 사람 잘 모른다”며 도망갈 개구멍만 찾는다. 온 나라가 공황에 빠져 있지만, 이 일을 계기로 비정상이 정상으로 돌아올 수만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전화위복이 아니겠는가.

/서동훈(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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