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릴 적 명이는 아주 이른 봄에 눈 속에서 자라는 산나물이었다. 울릉도를 개척할 즈음, 긴 겨울을 지나고 굶주림에 시달리던 사람들이 눈이 녹기 시작하면 산에 올라가 눈을 헤치고 이 나물을 캐다 삶아 먹으면서 생명을 이었다고 해서 그 이름을 명이라고 불렀다고 전해 들었다. 내가 아는 명이는 그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명이를 뜯기 위해 산을 찾는 아낙들의 발길이 뜸해졌다. 대신 등산화를 신고 포댓자루를 짊어 진 남정네의 발길들이 산으로 산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뿌리를 뽑아 먹던 명이가 어느 날부터인가 잎을 먹는 고급 쌈 채소로 둔갑을 하더니 몸값이 천정부지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명이 철이 되면 바다를 건너온 낯선 사내들이 울릉도에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전문 산악 장비를 갖추고, 자일을 메고 이른 새벽 산으로 출근하는 산사나이들은 땅거미가 지고도 한참이나 지나서 서너 개의 나물 자루를 산 아래로 굴리며 내려오곤 했다. 그들은 한 철 금싸라기를 긁어모으고 명이가 자취를 감추는 늦봄이 되면 명이랑 함께 동네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그들이 떠난 자리에는 `어디서 온 아무개가 올봄에는 얼마를 벌어서 갔다더라`는 소문이 무성했다. 더 이상 명이는 명을 이어가는 산나물이 아니었다. 봄이 되면 건장한 사나이들을 산으로 유혹하는 금싸라기가 되어 있었다.
고향을 떠나온 뒤 소문으로 전해 들은 그도 그런 부류의 사나이였다. 덥수룩한 콧수염과 구레나룻으로 봤을 때 젊은 시절 여자 꽤나 울렸을 거라는 고향 지인의 말을 이따금씩 전해 들었다. 지인은 그가 하루 나절에 칠팔십만 원을 거뜬하게 벌어 온다며 아마도 그는 전생에 산다람쥐였을 거라는 칭찬을 했었다. 그랬던 그는 돌아가는 길도 남달랐다. 명이철이 끝나기도 전에 산에서 실족사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는 울릉도가 화산섬이라 푸석한 바윗돌이 해동되며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는 생리를 간과했을 것이다. 노다지를 캔다는 생각은, 봄을 맞은 산속의 생명이 제 흥을 못 이기고 흙 위에 들떠 있다는 사실을 잊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하얀 눈 속에 숨어 있던 명이의 생명력은 차가운 얼음의 한기를 품고 자란 매정함에서 온다는 진리도 그는 몰랐던 게다. 날이 풀리고, 얼어붙었던 바위가 녹으면, 들떠 있던 흙들도 자리를 잡아가고 나무들도 뿌리를 다지며 함께 살아간다는 섬마을의 진리를 간과한 채, 뿌리가 들뜬 나뭇가지에 자일을 메고 몸을 의지한 게 스스로 명을 단축한 원인이 돼버렸다. 가슴을 더욱 쓰리게 하는 건 산다람쥐를 닮은 그처럼 노다지를 캐다가 유명을 달리하는 이들의 얘기가 해마다 한두 번씩은 꼭 들린다는 것이다.
명이 잎이 검푸른 멍으로 서서히 물든다. 반지르르한 푸르름을 포기하고 검푸른 투명함으로 새로운 모습을 보인다. 이제는 숙성 기간이다. 간장의 짠맛과 식초의 새콤함, 그리고 설탕의 달콤함까지 어우러지고 나면 환생하는 명이의 맛이 될 것이다. 다시 태어난 명이는 달콤쌉쌀한 맛만 남아서 입안을 행복하게 해 줄 것이다. 그러나 가슴 한구석에 남는 알싸한 느낌은 무슨 맛으로 표현해야 하는지 답이 없다.
명이는 더 이상 명(命)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