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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 피는 골목

등록일 2015-01-23 02:01 게재일 2015-01-23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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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현기수필가·동성교역 대표
마당 한 귀퉁이 시멘트 갈라진 틈새를 비집고 민들레가 피었다. 마당뿐만 아니라 사무실 앞 담벼락 밑에도 몇 송이가 무리를 지어 얼굴을 내밀었다. 봄바람 두어 번 스쳤을 뿐인데 갑자기 어디에서 날아와 저 험한 곳에 뿌리를 내렸는지 모를 일이다. 물도 없고 거름도 없어 가녀리고 왜소하다. 뿌리나 제대로 내렸는지 몇 번을 들여다본다. 저 혼자 생글거리는 모양새가 제법 꽃답지만, 도시의 시멘트 사이에서는 왠지 그 모습이 애잔하다. 그 여리고 앙증맞은 몸매 어디에 그런 강인한 생명력이 깃들어 있었는지 볼수록 감탄이 절로 나온다.

주택가도 아니고 상가지역도 아닌 어중간한 곳에 사무실이 있다. 이십여 년째, 내 건물은 아니지만 마당과 창고를 주인처럼 사용하고 있으니 세입자들이 자주 바뀌는 다른 집과는 달리, 나는 주위에서 거의 토박이 대접을 받고 있다.

어느 날 사무실 앞에 고물상이 들어섰다. 원래 널찍한 마당이었는데 땅을 파고 계근대를 설치한 날부터 온갖 잡동사니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바람에 조용하던 일상이 한순간에 무너지고 말았다. 폐지와 고철을 집어 올리는 크레인 소리, 십 원이라도 더 받아가려는 노인의 원망섞인 소리, 망치로 드럼통 쪼개는 소리, 그리고 먼지…. 환경문제로 인한 이웃 간의 다툼이 남의 일인 줄 알았더니 내가 환경과를 찾아가야 할 판이었다.

고물상 주인에게 이사를 가라고 몇 번의 경고를 보냈다. 그때마다 죄송하다는 말만 되풀이 할뿐, 신경 거슬리는 소음과 먼지는 여전히 줄어들지 않았다. 주민들의 진정서를 받아 환경청에 고발하겠다며 으름장을 놓았다. 그때마다 힘없이 봐달라는 소리만 되뇌인다.

며칠 후 저녁때, 고물상 주인과 할머니가 맥주 몇 병을 들고 왔다.“너무 그러는 것 아니다. 내가 사람을 잘못 봤네!” 할머니의 표정에는 간절함과 울화가 교차하고 있었다. 다짜고짜 사람을 잘못 봤다며 너무 그러지 말란다. 속속들이 잘 알지는 못하지만 이십여 년을 이웃해 지내면서 동네의 폐지와 고물을 주워서 아픈 할아버지를 봉양하는 사정을 어렴풋이 알기에 가능하면 도와드리려 했었다. “왜요? 무슨 일인데요?” “젊은 사람이 그러면 못쓴다. 내가 사장을 잘못 봐도 너무 잘못 봤다” 영문 모르고 당하자니 화가 치밀었다. “도대체 뭔지 말씀이나 해 보십시오” 그제야 자리에 앉은 할머니가 맥주잔을 불쑥 내밀었다. 고물상 주인이 아들 못잖은 조카란다. 제법 큰 사업을 하다가 IMF때 부도가 난 이후로 되는 게 없었단다. 마지막 호구지책으로 벌인 일이니 이웃 간의 정으로 좀 봐달라는 거였다. 두 사람이 찾아온 이유를 알았지만, 앞으로의 쾌적한 환경을 위해서는 모르쇠로 밀어붙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할머니의 한마디가 나를 주춤거리게 했다.“있는 사람은 다 이렇게 제 욕심만 차리나? 내가 사람을 진짜 잘못 봤다.” “할머니 나 있는 사람도 아니고 욕심만 차리는 사람은 더욱 아닙니다.”했지만, 그 말 한마디에 젠장! 나는 졌다. 이해하고 참기로 했다.

`있는 사람`이란 말과`잘못 봤다`는 절규가 묘하게 나를 자극했다. 잘 보일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슬그머니 물러섰다. 바보!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일상의 풍경이 친근하게 다가온다는 것이었다. 유모차에 폐지를 싣고 오는 노인, 아이의 손을 잡고 빈병을 가져오는 새댁, 그 모든 쓰레기를 일일이 분리하는 주인, 더러 학생과 아가씨도 재활용품을 들고 와 몇 푼의 돈을 받아가는 그 모습이 잔잔한 동심원을 점점 넓혀가는 것이었다. 나는 한번이라도 그렇게 살아본 적이 있었던가?

마당 귀퉁이 시멘트 틈새에도, 굳건한 담벼락 아래에도 민들레가 피었다. 유난스레 기복이 심한 올해의 날씨에도 아랑곳없이 작은 꽃잎을 앙증스레 하늘거리다가, 더러는 바람에 실려 떠나기도 하고, 더러는 자동차 타이어에 무참히 깔리기도 한다. 그래도 내년에 또 필 것이다. 아침에 출근을 하니 고물상 주인이 골목을 깨끗이 쓸어놓았다. 다행히 민들레를 뽑지는 않았다. 말간 골목에 노란 민들레가 아늑하고 정감어린 풍경으로 다가온다. 폐지와 고물을 들고 오는 사람들의 모습이 민들레를 닮았다. 소음과 먼지 속에서 또 한 번의 봄날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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