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식의 예를 들자면 “나는 그 여자가 좋아”라고 말하는 건 개연성에 머물러 있는 거지만 “코를 찡긋하며 웃던 그 모습에도 미칠 지경이었지”라고 말한다면 핍진성을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핍진성을 구축하는 데는 더 많은 염력과 생각의 힘을 필요로 한다. 문학 용어에서 나온 핍진성은 일견 그럴듯해 보이는 진실의 정도를 말한다. 있음직한 이야기로 독자를 납득시킬수록 소설로서의 힘을 갖는다. 플롯과 캐릭터보다 더 우선되어야 할 소설 요건이야말로 핍진성이라고 작가는 강조한다.
핍진성을 구체화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훈련이다. 눈썰미가 없으면 좀 전에 만난 사람이 무슨 옷을 입고, 어떤 헤어스타일을 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그 사람을 제 삼자에게 설득시킬 길이 없어 그냥 `내 앞에 앉았던 사람`이라고 어물쩍 말하게 되고 만다. 하지만 눈썰미를 훈련하는 경우라면 그가 진자주색 털조끼를 입은 데다, 짧은 단발이었다는 것을 금세 기억해낼 수 있다.
소설도 마찬가지다. 훈련하면 글썰미(?)도 생겨나고 나아가 핍진성 획득이라는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게 된다. 눈에 띄는 진자주색 털조끼와 지나치게 짧은 단발을 한 사람을 묘사하는 과정을 통해 그가 성격이 특이한데다 단호한 면이 있음을 독자에게 알려줄 수 있게 된다. 구체적 정황을 담은 묘사 덕에 독자의 공감을 쉽게 얻어낼 수 있는 것이다. 허구의 이야기를 믿게 하는 원동력은 핍진성이고 그것을 얻으려면 끝없는 연습의 힘 외의 방법은 없다는 걸 김연수 작가의 귀띔을 통해 새삼 확인한다.
/김살로메(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