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의 주된 내용은 베를린 올림픽에 달리기 선수로 출전한 바 있는 한 미국 남자의 일본 제국주의 포로 생환기이다. 예상한 것보다 훨씬 점잖은 수위의 묘사가 이어졌다. 원경험자의 증언을 충실히 반영하느라 그런지 스토리텔링에 과장이 없었다. 밋밋한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처럼 조금 지루했다. 고춧가루와 젓갈이 잘 배합된 김장김치를 기대하고 독을 열었는데 심심한 동치미가 담긴 독을 만난 기분이랄까. 그 어디에도 우리가 알고 있던 전시 일본국의 잔혹한 포로 학대기는 없었다. 어느 집단에서도 있을 수 있는 고만고만한 포로수용소의 일상을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미국인 포로를 산 채로 장작처럼 태웠다거나, 죽인 다음 인육을 먹었다거나 하는 극단적인 장면은 그림자조차 나오지 않았다. 주인공 루이 잠페리니가 당하는 폭행과 수치심은 관객이 몸서리 칠 정도의 극한의 것도 아니었다. 이 정도 장면들에 저 난리를 칠까 싶을 정도로 순화된 장면들이 대부분이었다. 일본 우익집단의 극단적인 보이콧 현상이 도리어 입소문이 되어 이 싱거운 영화의 롱런을 돕게 될지도 모르겠다.
반성을 하면서 몽니를 부리면 그나마 이해가 간다. 하지만 반성은 간데없고, 원폭 피해자라는 결과적 아픔만을 내세워, 진짜 피해자의 근원적 고통을 외면하려 드는 그들의 합리화에 할 말을 잃게 된다. 나치의 홀로코스트만이 만행이 아니다. 인간 실존의 위엄을 짓밟았던 일본 제국주의의 실상도 그에 못지않았다. 가장 직접적인 피해 국민으로서 영화보다 더한 잔혹성을 연출했던 그들의 잘못이 반성으로 이어질 수만 있다면, 온건한 묘사이긴 하지만 그들의 실체를 전하는 이 영화가 오래 상영되었으면 좋겠다.
/김살로메(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