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매서운데다 추운 날씨라 따뜻한 물이 절로 당겼다. 그런데 식탁에는 물통이 하나 밖에 없었다. 누군가 벨을 눌러 물을 요청했다. 도착한 직원은 물통에 물이 가득 차 있는데 왜 불렀냐는 뚱한 표정을 짓는다. 거기까지면 괜찮겠는데 “(물이 있는 쪽을 턱으로 가리키며) 그래서 물을 더 달라는 거예요, 말라는 거예요?” 따지듯이 말한다. 물 한 병이 모자라니 더 달라고 정당하게 요구하는데 -거의 정중한 부탁에 가까웠다! -그조차 성가시다며 적반하장이다.
이럴 땐 울며 겨자 먹기로 역지사지하는 수밖에 없다. 아마 주인에게 싫은 소리를 들었거나, 동료 간에 안 좋은 일이 있는 상태에서 바빠 죽겠는데 하찮은 물까지 달라고 하니 감정선에 혼란이 온 것이리라. 감정 노동에 종사하는 경우 매양 한 가지의 낯빛을 유지할 수는 없다. 억지로라도 그 상황을 이해하지 않으면 손님 입장도 기분이 엉망이 되고 마니 참고 만다. 그때 인증샷으로 올라온 폰의 사진을 보게 되었다. 고만고만한 키를 자랑하는 무리에서 유독 키 크고 늘씬하고 상냥하기까지 한 회원이 나머지 분들의 낮은 키에 맞추느라 기꺼이 무릎을 굽혔다. 그 모습이 한눈에 들어와 오래 잔상으로 남았다. 작은 것에서 기분 상하고 작은 것에서 위안을 얻는 것 그것이 우리네 일상이다.
“그리고 항상 바람이 분다 항상 / 우리는 많은 말들을 듣고 말하며 / 육신의 쾌락과 피곤을 좇는다 /…. 그럼에도`저녁` 이라고 자주 말하는군요” 호프만스탈의 시구이다. 크고 작은 온갖 것에 흔들려도 그럼에도 우리는 `저녁`을 기다린다. 서럽고 따뜻하고 정겨운 그 저녁의 위안이 있기에 항상 부는 바람에도 견딜만한 것.
/김살로메(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