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마대사와 신광 스님의 일화가 떠오른다. 신광 스님이 보기에 옛사람들은 도를 구할 때 뼈를 깨뜨려 골수를 빼고, 주린 이를 위해 피를 뽑고, 머리카락을 진흙땅에 펴고, 벼랑에서 떨어져 굶주린 호랑이의 먹이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런 경지에 도달하지 못한 스스로를 책망하며 달마대사에게 청한다. 마음이 초조하고 불안해서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고. 그런 신광에게 달마는 그`마음`을 가져오면 고민을 해결해주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마음이란 건 찾을 수도 보여줄 수도 없는 것. 찾지도 보여줄 수도 없는 한갓 마음 때문에 초조하고 불안해하느냐고 달마는 일갈한다. 크게 깨친 신광은 달마가 보는 앞에서 왼쪽 팔을 칼로 잘라 도를 깨친 징표로 삼는다.
도를 구하던 신광 스님의 불안 심리와는 성격이 다르겠지만 현대인 역시 저마다의 불안의 집을 마음으로 짓는다.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불안의 실체는 인간만이 느낄 수 있는 그 무엇의 영역이다. 완벽한 자유를 획득할 수도 누릴 수도 없는 인간만이 지니는 고유한 심리기제가 불안이다. 바람처럼 물상에서 떨어져 떠돌 수 있을 것, 물처럼 강바닥을 버리고 흐를 수 있을 것, 구름처럼 지상에서 멀어져 피어날 것, 이런 능동적 고립을 즐길 수만 있다면 우리는 불안해할 필요가 없다. 신광 스님처럼 도를 구하는 자는 극한의 산정에서 홀로 고고하고, 제 안위를 구하는 범인(凡人)은 평지에 몰려 아우성으로 난장을 이룬다. 그러니 스스로 보통 사람으로 알고 생활하는 이들은 불안할 권리라도 누릴 수밖에.
/김살로메(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