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좋아진 지금은 곳곳에 네일 아트 숍이 생겨났다. 남의 손톱을 관리하는 것으로 생업을 삼아도 될 정도로 다양하고 매혹적인 사회가 도래한 것이다. 스스로 손톱을 관리하는 것보다 네일 샵에 들르는 것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되었다. 쌓인 스트레스를 날릴 수 있고, 눌린 기분을 풀어주는 대가로 그 정도의 호사를 누리는 건 절대 사치가 아닌 사회가 온 것이다. 개인적으로도 손님 좋고 주인 좋은 신나는 행위 중의 하나가 네일 아트라고 생각한다.
얼마 전`젤 기법`으로 손톱을 칠한 적이 있다. 기존의 방법에 비해 비싼 대신 작품 지속력이 있고 미용성도 있다기에 그렇게 했다. 혹사당한 손톱의 순서대로 조금씩 칠이 마모되긴 했지만 매끄러운 정도는 봐줄만 했다. 한데 어느 순간 손톱 끝이 갈라지더니 심한 것은 부러지기도 했다. 오래 간다고 가만 둔 게 화근이었다. 그럴수록 중간 점검을 하거나 새로 관리를 받았어야 했는데 시기를 놓친 것이다.
손톱도 숨을 쉰다는 걸 왜 몰랐을까. 예쁜 겉만큼 손톱 안에서는 호흡 곤란이 왔던 것이다. 속담에 손발톱이 젖혀지도록 벌어 먹인다, 는 말이 있다. 손발톱이 으스러지고 문드러지도록 일을 해 벌어 먹인다는 뜻인데, 그것이 젖혀지도록 방치만 했으니 나로선 부끄러운 일이다. 멋도 좋지만 실체 보듬기를 잊어서는 곤란한 것을. 내 좋으라고 한 일이 실체를 망가뜨린다면 그게 무슨 소용일꼬. 우선 보이는 가짜에 밀려 탈색되고, 금 가고, 부러지는 진짜를 챙기지 못했다니. 손톱이 새로 자라는 동안 눈썰미 허투루 쏜 그 시간을 불러내 반성문을 쓰고 쓴다.
/김살로메(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