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현상 앞에서 대개 이론적 당위성과 실제 상황은 다르게 작동한다. 인간은 이성적이지도 않고, 공평무사하지도 않으며, 스스로 객관적이지도 않다. 이성적인 인간, 공평무사한 입장, 객관화하는 자아 등은 철학서에 나오는 당위의 문제일 뿐, 현실은 훨씬 더 복잡한 게임 양상을 보인다. 그럴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황 논리에 따라 제 행동을 규정짓고 거기에 맞춰 스스로를 합리화시킨다. 논리적 사고를 하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자기 집단에 유리하다고 판단할 때만 그것을 작동시킨다. 그렇게 되면 논리적 사고가 비합리적 직관을 앞선다고 볼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린다.
인상 깊었던 영화 장면 하나. 오랫동안 탑에 갇혀 지내던 사내가 인간 사회로 나와 사회화 과정을 학습하는 이야기인데, 사람들은 기성의 논리를 사내에게 강요한다. 그를 가르치는 심리학 교수가 그를 탑으로 데려간다. 탑을 보고 사내는`이 탑보다 자신이 살았던 방이 더 크다`고 굳게 믿는다. 또한 큰 건물을 짓는 원리를 모르기 때문에 그 탑을 거인이 쌓았다고 확신까지 한다. 탑 안의 방에 갇혀 살 때는 전후좌우 돌아봐도 방은 그대로 있었는데 밖에서 본 탑은 돌아서자말자 제 눈에서 사라졌기 때문에 사내에게는 탑이 방보다 클 수는 없는 것. 비합리적인 감각의 직관이 합리적인 이성의 논리를 압도하는 그 장면이 무척 시적으로 다가왔었다.
살다 보면 시적 감수성이 논리적 합리성을 능가할 때를 만난다. 논리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않은 삶 마당, 가끔은 직관의 진정성으로 논리적 사유의 허점을 짚어주는 역설의 아우라를 떠올린다. 오래 갇힌 사내에겐 탑보다 방이 큰 것, 그게 시적 진실이다.
/김살로메(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