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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복 대신 앞치마

등록일 2014-12-05 02:01 게재일 2014-12-05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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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숙영포항시 홍보담당관실
자녀를 양육하다 보면 `과연 이 아이의 재능은 어디에 있을까, 그 재능을 한 번 키워보고 싶다`기 보다는 남들이 다 가는 편안한 길로 넓은 관문으로 묻혀 가는 평범함이 최선의 선택일 거라 믿는 부모들이 부지기수다.

자녀에게 부모란 필요의 존재일지 모르지만 부모에게 자녀란 그들이 살아가는 이유이다. 아이에게 이 다음에 커서 슈바이쳐 박사의 인술을 펼치는 의사가 되기를 바라는 것과 아이가 커서 사람들의 다양한 미각을 만족시키는 요리사가 되기를 바라는 것 둘 중 하나를 택하라면 대다수 부모의 솔직한 심정은 이왕이면 의사가 되기를 바랄 것이다.

미국 유명 의대 졸업을 1년여 남겨 두고 “어머니, 저는 요리사가 되고 싶습니다. 의대는 그만두겠습니다”라는 아들 앞에 어느 부모든 청천벽력 같은 소리에 놀란 가슴 진정이 안 될 것이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 두 살부터 혼자 힘으로 키운 외아들이 졸업을 앞두고 학교를 그만두고 요리의 길로 간다고 했을 때 그 어머니는 반대했다고 한다. “안 된다. 실수하는 거야. 남자에게 요리는 취미일 뿐이다” 하지만 아들은 의대에 자퇴서를 내고 뉴욕의 요리학교(ICC·International Culinary Center)에 등록해 수술복 대신 앞치마를 두르고 수술칼 대신 식칼을 들었고 어머니와 아들은 1년간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뉴욕 맨해튼의 최고급 레스토랑 `다니엘`의 인턴을 마치고 정식 채용돼 일하던 어느 날 어머니가 손님으로 찾아오셨고 품격 있고 격조 높은 정중한 서비스와 완벽한 음식을 맛 본 어머님은 “네가 요리를 좀 하는가 보구나”하며 아들의 남다른 선택을 인정해 주셨고 아들은 그 이후로 자신이 가장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할 수 있게 됐다.

남다른 선택을 한 그는 바로 김훈이(42·미국 이름 후니 김)씨다.

그가 시작한 뉴욕 52번가 한식당 `단지`(Danji)는 한식당으로서는 최초로 미식계의 `성서`로 불리는 레스토랑 평가서 미슐랭 가이드의 별 하나를 받았다.

“과학을 좋아해서 과학고에 진학했고 코네티컷대 메디컬스쿨 4년 과정 중 3년 과정까지 배우고 그만두고 요리의 길로 갔는데 자신을 요리사로 만든 건 요리 못 하는 어머니라고 한다, 패션 디자이너이신 어머니는 요리할 시간이 별로 없었고 변호사인 아내 또한 어머니 보다 더 요리를 못 해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려면 부지런히 식당을 돌아다녀야 했다고 덕분에 미각이 일찌감치 발달했고 어느 날 내 손으로 직접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 봐야겠다는 생각에 잠시 요리 학원에 다니다 완전히 요리와 사랑에 빠져 들게 됐다고 한다.

탄탄대로를 달리다 갑자기 알 수 없는 미궁의 인생 뉴턴을 하기란 쉽지 않는 결정이었을 것이다. 그의 용기 있는 결정에 과감한 결단력에 찬사를 보낸다.

뉴요커들에게 한식전도사로서 한식의 세계화에 앞장 서고 있으며 배우 나탈리 포트먼도 빌 클린턴 딸도 고객으로 만들면서 된장찌개와 은대구조림 같은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는 평범한 요리로 비범하게 뉴욕을 사로 잡아 한식의 새 지평을 열고 있으며 대표 메뉴는 `Dwenjang jjigae(된장 찌개)`고 다른 거의 모든 한식에도 된장을 사용하기로 유명한데 그가 쓰는 된장은 바로 대한민국 대표브랜드 시상식에서 2년 연속 대상을 수상한 포항시 공동브랜드인 `영일만친구`, `죽장연`에서 가져다 쓰는 된장이라고 한다. 가장 한국적인 것을 가장 세계적인 것으로 만든 그에게 박수를 보낸다.

피를 말리던 수능이 끝이 나고 수험생들은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남을 도와 주고 싶어서 의사의 길로 갔다가 남을 즐겁게 해 주기 위해 다시 요리의 길로 향로를 바꾼 김훈이 씨와 같이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일, 가슴 뛰는 일들을 하는 과감한 선택과 결단을 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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