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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조사비

등록일 2014-11-21 02:01 게재일 2014-11-21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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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오신 로타리코리아 상임고문

결혼은 둘이 다리 하나씩 묶고 뛰는 이인삼각이다.

윤달 9월이 끝나자 청첩장이 쌓인다. 해를 넘기려하지 않으려는 예비부부들로 인해 올해는 12월, 1월이 결혼 성수기가 됐다. 음력 10월이 시작되는 주말부터 예식장 서너 군데를 찾는 것이 일상이 돼 버렸다.

이럴 때마다 봉투에 얼마나 넣어야 할지를 두고 잠시 머리를 굴린다. 친분도 따지고 전에 내가 얼마를 받았더라 하는 생각이 들면 제 낯이 뜨겁다. 사람의 관계를 금액으로 환산해 본다는 것이 얼마나 얕은 짓인가.

결혼식 평균 비용이 억대를 넘어서니 부조금을 받지 않고서는 감당하기가 힘든 세상이다. 청첩장을 돌릴 수밖에 없지만 받는 입장에서 보면 부담이 만만치 않다.

18세기에 등장한 현금부조는 그 편리함 때문에 계속 확대됐다. 원래는 흉사(凶事)에만 장례용품으로, 몸으로 돕는 품앗이가 많았다. 생활이 빈곤했던 일제강점기엔 몸으로 돕는 품앗이와 혼례식에 쓰일 물품 부조가 현금보다 많았으나 시대모습에 따라 요즘처럼 변해서 20세기 후반부터 현금부조가 극에 이르렀다고 한다. 국민연금공단이 두 해전 월 100만원을 넘게 연금을 받는 은퇴자를 대상으로 사용처를 조사한 내용을 보면 65%는 생활비로, 16%는 경조사비로 지출했다. 의료비(8%)와 여가비용(7%)의 곱절이 됐다. 활동 범위가 넓고 적금 붓는 마음이어서 조금은 쉽게 접근할 수 있을 직장인도 이 비율과 별 차이는 없을 것 같다.

경주시 천북면으로 귀향을 했다 다시 서울 살던 집으로 돌아간 군 출신 고위직 인사는 골프보다 경조사비 끊기가 더 힘들었다고 한다. 밀려드는 청첩장과 부고가 무서워 역 도피이민을 한 셈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만나야 할 지방 생활에서 경조사에 얼굴을 내밀지 않으면 사람 행세가 어렵다. 먹고살기에도 빳빳한 연금을 체면치례에 넣는 실정이자 축의금, 부의금의 무게에 눌려 마음 병(病)을 앓는 셈이다. 세계에 이런 나라가 또 있을까.

특히 우리 경조사는 손님이 북적거려야 체면이 쓴다고 여겨진다. `갑`의 논리가 통하는 모순사회다. 고위공직자가 청첩장을 돌리지 않고 자식 혼사를 치렀다는 뉴스가 돋보이는 것 자체가 그렇다.

결혼 시즌이 되는 봄. 가을엔 직장인 은퇴자 가릴 것 없이 받을 때 상황과는 달리 비명을 지른다. 작은 결혼식 캠페인이 신문지면을 채우고 `가족 친척 중심으로 간소화하자`는 개선의지는 보이지만 현실은 꿈쩍도 안 한다.

병원과 장례식장이 한 공간에 배치된 장례문화도 기이한 풍경으로 꼽히지만 돌아가신 분이 누구인가 보다는 유족에게 눈도장 찍으러 온 조문객들로 북적이고 현금을 넣는 모습을 어디서나 볼 수 있다.

이웃 일본도 조의금은 받는다. 그 대신 우리처럼 무차별 부음을 날리지도 않고 상을 치른 다음날부터 조문객들에게 답례품을 보내어서 정중함을 나타내는 것이 완전 틀린다.

우리나라에서 프리랜서 기자 생활을 한 외국인은 “한 시간도 안 걸리는 결혼식을 치르려고 값비싼 드레스를 빌려 입는 것도 이해가 안됐지만 입장, 혼인서약, 축하 연주까지 일사천리로 해 치우는 것이 너무 정신없고 놀라웠다”고 지적했었다.

축의금, 조의금을 받지 않는 것이 아름답게 보인다는 얘기가 아니다. 모두가 즐겁게 지낼 수 있는 모습이 필요하다는 합의정신이 보편화 됐으면 한다. 부조금은 글자 그대로 서로 돕는 정신이다. 억대가 넘는 결혼식 씀씀이가 청첩장을 뿌리게 만들었다. 미국의 결혼비용 3만8천 달러의 무려 다섯 배에 이른다. 검소한 결혼식을 치룬 부부일수록 행복비율이 높게 나왔다는 조사가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 게 우리사회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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