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레드카펫`서 에로영화 감독으로 분한 윤계상
운명적인 `찰나`를 강조하는 배우 윤계상(36)의 눈가에 보기만 해도 기분 좋은 초승달이 떴다.
로맨틱 코미디 영화 `레드카펫`의 에로 영화 감독으로 돌아온 윤계상을 21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윤계상은 `색즉시공`류의 영화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호기심에서 받아든 `레드카펫` 시나리오가 단숨에 읽었을 정도로 재미있었다고 했다.
“이렇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든 사람이 대체 누구일까 하는 생각에 연출자인 박범수 감독을 만났어요. 그런데 박 감독이 실제로 270편의 에로 영화를 찍은 감독이라는 거예요.”
우리 나이로 서른일곱 살 동갑내기인 감독과 배우는 솔직한 대화를 나누며 의기투합했고 박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가 주축을 이룬 영화는 그렇게 탄생했다.
영화는 10년째 에로 영화를 찍는 감독 정우(윤계상 분)가 우연히 톱 여배우 은수(고준희)와 엮이고, 이후 주변 편견을 극복하고 새 작품을 연출하기까지의 과정을유쾌함과 감동을 섞어 그려냈다.
윤계상은 “`널 사랑해, 응원하고 있어`라고 직접 표현하면 오글거릴 텐데 손을 주물러 준다거나 아무 말 없이 한번 안아준다거나 하는 식으로 은근하게 표현하는 것이 이 영화의 힘”이라면서 “버무림이 기막힌 영화”라고 강조했다.
영화에서는 야한 이야기를 차지게 내뱉는 조감독 진환(오정세), 영상 편집과 컴퓨터그래픽 등 못 하는 것이 없는 순정파 준수(조달환) 등 조연들의 감칠맛 나는 대사와 톡톡 튀는 감독의 아이디어가 특히 빛을 발한다.
“박범수 감독은 마치 대사가 애드리브처럼 느껴질 정도로 대단한 글솜씨를 가졌어요. 박 감독은 긴장과 걱정 탓인지 초반에는 서툰 느낌이 있었는데 나중에는 뒷심을 발휘했어요. 그리고 편집 포인트를 정말 잘 알아요. 270편이나 되는 영화를 찍으면서 편집을 많이 한 경험이 큰 자산인 것 같아요.” 윤계상은 이어 “정세형의 호흡을 갖고 노는 능력은 정말 놀랍다”면서 “배우들 모두가 오버하지도, 남의 몫을 침범하지도 않고 자기 자리를 지킨 덕분에 영화가 재미있게 나온 것 같다”고 강조했다.
지오디라는 당대 최고의 아이돌로 6년을 보낸 뒤 2004년 갑자기 연기로 활동무대를 옮긴 윤계상은 최근 지오디라는 이름으로 다시 뭉쳤다.
수년 전까지만 해도 지오디 출신 배우라는 꼬리표에 스스로 더 강박증을 느끼는모습이었던 윤계상은 이제 옛 이야기를 곱씹을 때도 여유롭고 편안한 표정이었다.
“제가 지오디에서 나올 때 오해가 있었고, 이후 너무 큰 강을 건넜기에 다시 지오디로 활동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어요. 예전에는 정말 욕심이 많았던 것 같아요.
(자신의 배를 가리키며) 이 배를 해체해서 내장을 보여주면, 내공을 표현하게 되면 연기력을 인정받을 것 같았는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윤계상은 “제 안에 남아있던 지오디 모습을 사람들이 그리워하고 좋아한 건데 장점을 버리고 새로운 것만을 가지려 했던 모습이 부끄럽기도 하다”면서 “지금 비록 큰 배우는 아니지만 영화를 할 수 있는 자체도 정말 감사하다”고 말했다.
“우리 영화는 꿈을 이루고 싶은 사람들의 이야기에요. 우리는 아직 젊고 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주는 영화입니다. 편견을 갖지 말고 일단 영화를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새 세상이 열릴 겁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