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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정심 유지하기

김살로메(소설가)
등록일 2014-07-17 02:01 게재일 2014-07-17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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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자기력은 얄궂다. 대개 기억은 좋은 쪽보다 나쁜 쪽의 힘이 세다. 주변의 가깝거나 먼 사람들 대부분은 특별히 악하거나 선하지 않다. 그저 좋으면 웃고, 슬프면 울고, 화나면 분노하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그런데도 그 평범한 사람이 내게 깊은 상처를 준 적이 있으면 그것에 대한 기억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 그 사람에 대한 더 많은 좋은 기억이 있음에도 그 상처가 쉽게 아물지 않는다. 상처는 다른 모든 좋은 것들을 약화시키는 속성이 있다.

타자에 대한 좋은 쪽의 기억은 나쁜 쪽의 기억보다 훨씬 많은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오히려 당연하게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반면에 타자에 대한 나쁜 쪽의 기억은 단 한 번이라도 깊이 각인되고 나면 거기에서 헤어 나오기가 쉽지 않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말이 기억에도 적용되는 셈이다. 상처는 나쁜 기억을 낳고 그것의 자기력은 끈질기고 뭉근하게 우리 내면을 괴롭힌다. 그 상처의 길은 끝내 기억을 왜곡한다. 똑같은 사안을 두고도 내 기억과 당신의 기억이 다른 것은 모든 개별자는 기억하고 싶은 대로 기억하기 때문이다. 편리한 대로 가공하고 아쉬운 대로 재배치되는 게 사람의 기억이다. 기억은 대체로 믿을 만하지만 완벽하게 믿을 수 있는 건 못 된다.

한편으로 기억 인자가 자기 유리한 대로 재편성된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인지. 기억이 만약 원형질 그대로 재생된다면 얼마나 당혹스러울 것인가. 안 그래도 좋은 기억보다 나쁜 기억이 더 끈질기게 우리의 심리적 옷자락을 잡아당기는데 왜곡조차 되지 않고, 가공조차 되지 않은 채 재현된다면 제 기억의 한계가 부끄러워 더한 상처를 받게 되는 건 아닌지.

떠올리기 싫은 기억은 내면의 고통을 부른다. 고통은 평정심을 흐트러뜨리고 급기야 자기 연민으로 치환되곤 한다. 그 연민이 다 이해받는 건 아니니, 스스로에게 다음과 같은 냉정한 조언을 준다. `네 연민조차 지나친 기억의 왜곡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음을 상기하라`는 것. 그렇게 부단히 평정심을 유지하려 노력하는 게 삶인 것을.

/김살로메(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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