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입이 잘 되면서도 금세 읽지 못하는 것은 공감이 가는 장면마다 생각이 가지치기를 하기 때문이다. 그 상황, 그 환경에서 아이히만과 다를 수 있는 자가 과연 몇이나 될까, 삼라만상의 그 무엇을 내 눈의 잣대로 규정짓고 판단한다는 것이 얼마나 이율배반적인가, 내 안의 선이 그리 특별하지 않듯, 내 안의 악 또한 그러하거늘 왜 우리는 유독 타인의 악행에만 그토록 분노하는 것일까, 이런 생각들이 꼬리를 문다.
이 책이 그토록 회자되는 건 단연 부제 때문이다. 대놓고 `악의 평범성에 관한 보고서`라고 되어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란 특수성을 감안하지 않더라도 인간 보편성의 기저에는 악의 평범성이 자리잡고 있다는 게 한나 아렌트의 주장이다. 보통의 악, 평상의 악이라니 섬뜩한 면도 없지 않지만 그리 틀린 말도 아니다. 절대의 선, 객관의 선을 행사할 수 있는 자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재판을 방청한 그녀의 눈에 비친 아이히만은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저 직책과 명령에 충실했을 뿐, 어디에도 광적 학살에 집착하는 악의에 찬 기질이 숨어 있었던 건 아니었다. 그가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던 건 `무능성` 때문이었다고 아렌트는 짚어낸다. 판단의 무능성은 사고와 성찰이 부족할 때 생겨난다. 악의 평범성이 문제가 아니라 그것의 지속을 경계할 수 있는 올바른 사고 체계의 확립이 문제인 것이다. 이 지점에서 철학이 필요한 이유가 선명해진다. 악에 대한 보편적 통찰이 철학적 사유의 반성으로 이끌게 하는 힘, 그것이 한나 아렌트의 성과라면 성과일 수 있겠다.
/김살로메(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