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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진적 성숙

김살로메(소설가)
등록일 2014-06-30 02:01 게재일 2014-06-3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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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에 의해 선택한 성격과 달리, 나는 태생적인 겁쟁이다. 낯선 일을 싫어하고, 노상 허둥대고, 곧잘 상처받고, 넌더리나게 망설인다. 혼자 욱하고, 혼자 부끄러워한다. 사소한 일을 두고두고 곱씹으며 졸렬하게 군다. 그걸 들키지 않으려고 전전긍긍한다.” 정유정의 `히말라야 환상 방황`에 나오는 한 구절인데 공감이 간다. 누구나 겁쟁이고 누구나 졸렬하다. 작가의 말처럼 필요에 의해 우리는 자제심을 발휘할 뿐이다. 사람의 성질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이것을 작가는 `완강한 항상성`이라고 표현했다. 변하지 않으려는 본성적 자아와 변화를 원하는 필요에 의한 선택적 자아의 끊임없는 충돌, 이 사이에서 갈등하는 게 인간의 특징이다.

사람은 변하기 어렵다는 기본적 생각에 나는 동의한다. 그렇다고 작가의 말처럼 사람의 성질이라는 게 언제까지나 완강한 항상성을 유지한다고는 볼 수 없다. 사회적 요청이나 보편적 정서가 개별자에게 입력되면 그 완강함이란 벽은 허물어지기도 한다. 이 글 처음에 인용한 `필요에 의해 선택한 성격`도 그러한 면과 일맥상통한다.

혼자 살 수 없는 사람에게는 두 자아가 있다. 내 식의 자아와 사회가 원하는 그 자아는 끊임없이 충돌한다. 이 때 자유인은 내 안의 자아와 사회가 원하는 자아가 충돌한다는 것 자체를 인식하지 못한다. 진정한 자유인은 그 어떤 상황에도 휘둘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 다음, 그 둘의 충돌에서 내 안의 자아를 고집스레 승리의 방향으로 이끄는 자들이다. 개별적 이기주의자라 할 만하다. 마지막으로 그 둘의 충돌에서 사회가 원하는 자아에 스스로를 편입시키는 평화주의자가 있다. 상황에 따라 누구나 자유주의자가 되거나 이기주의자를 거치거나 평화주의자를 자처하게 된다. 중요한 건 이 모든 패턴 속에 성숙이란 성찰이 함께 한다는 점이다.

사람의 성정이 아무리 불변에 가깝다 하더라도 그것이 영원성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어떤 식으로든 `점진적 성숙`의 절차를 밟는다. 완고한 특징을 지녔지만 점진적 변화를 기대하게 하는 희망, 그것이 사람 성정이 지닌 매력이 아닐까.

/김살로메(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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