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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에 대하여

김살로메(소설가)
등록일 2014-05-28 02:01 게재일 2014-05-28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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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화나게 하는 `누군가`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내 화의 근원은 오직 나일 뿐이다. 우리는 대개 화가 나는 건 상대방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내게는 잘못이 없고, 내게는 별 문제가 없는데 `너`때문에 화가 난다고 생각한다. 내 화의 원인은 `누군가`여야만 하는 게 당연한 것처럼 몰아가고 싶어 한다.

예를 들면 `중2병`에 단단히 걸린 자녀가 있다 치자. 말은 퉁명스럽고 행동은 거칠기만 한 아이에게 말 한마디 건네기는커녕 눈 한 번 마주치는 것조차 쉽지 않다. 가슴에는 얼음팩을 안고 등에는 화롯불을 짊어진, 냉기와 열기가 공존하는 사춘기의 아이를 보면서 처음에는 망연자실하다가 나중에는 화가 난다. 화의 대상도 처음에는 딸이었다가 나중에는 아이의 친구에게로 옮겨 간다. 아이가 자꾸 엇나가는 것은 아이 친구 탓이라고 결론짓는다. 싹싹하던 아이가 샛길로 빠지는 건 친구 때문이라고 생각하니 더 화가 난다.

이런 추론 과정이 아주 틀렸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전적으로 옳은 것도 아니다. 일련의 과정에서 화가 난 것은 어쩌면 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자기 합리화 때문이라는 사실. `나를 화나게 하는 누군가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명제를 맘 깊은 곳에서는 인정하고 있었다는 그 사실이 나를 화나게 하는 것이다.

내가 화가 나는 건 말썽 피우는 아이도, 말썽의 도가니에 빠지게 한 아이 친구 탓도 아니다. 화나게 하는 상황에서 책임을 전가할 구실이 필요했을 뿐, 화가 난 건 오직 스스로 때문이다.

우리는 뭔가 화나는 일이 생기면 일단 그 화의 원인을 나 아닌 밖에서 찾으려고 한다. 일단 주변을 탓하고 타자에게 시선을 돌린다. 그렇지만 화의 근원은 바깥에 있는 게 아니라 애오라지 내 안에 있다.

화는 인간이 지닌 보편적 감정 중의 하나이다. 화가 없는 사람은 없다. 그 화의 원인을 밖으로 돌리느냐 스스로에게 귀결시키느냐는 화의 본질을 생각하면 그 답이 보인다. 타자의 자극으로 발현되는 화는 결국 나의 실존을 점검하는 좋은 잣대가 되어 준다.

/김살로메(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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