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를 들면 자본주의와 식민주의에 기인하는 일상의 폭력에 대한 두 철학자의 태도는 사뭇 달랐다. 사르트르는 구체화된 폭력에 대해 적극적으로 언급하고 체계적으로 관찰했다. 인간 해방과 사회 변화에 필요하다면 폭력의 기치도 높이 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에 카뮈는 폭력으로 발생할 수 있는 파괴적이고 부패적인 결과까지를 인식하고자 했다. 더구나 그 같은 폭력이 자신의 고국인 알제리의 상황이라고 봤을 때는 단호하게 거부했다. 폭력을 거부함으로써 폭력에 용감하게 맞서는 방식을 택했다. 이러한 차이는 본토의 부르주아 출신인 사르트르와 식민지 알제리 노동자 집안 출신인 카뮈가 맞닥뜨려야 할 태생적 운명이기도 했다.
카뮈는 타협을 싫어했다. 누군가 이의제기를 하면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 입장이 되었다. 딴 데로 시선을 돌리거나 추상적 분노의 감정을 느끼곤 했다. 부분적으로 화해의 기미가 있었다 해도 둘 사이에는 미지근한 관계 이상이 될 수는 없었다. 그러기엔 그 둘의 입장은 너무 달라져 있었다. 카뮈는 전체주의적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사르트르를 비난할 준비가 되어 있었고, 사르트르는 부르주아적 가치들을 점차 옹호하기 시작한 카뮈를 오해할 자세가 되어 있었다. 어느새 사르트르에게 카뮈는 `완전히 참을 수 없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카뮈보다 여덟 살 많았던 사르트르는 카뮈보다 20년을 더 살았다. 그들 논쟁의 가치 판단을 떠나 인간적 정리에서 카뮈 편을 들어주고 싶을 때는 있다. 더 오래 산 사람은 그만큼 말할 기회 또는 변명할 기회가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먼저 간 카뮈를 연민에 겨워할 필요까지는 없다. 남은 사르트르는 카뮈를 일방적으로 매도하지는 않았다. 카뮈에 대한 추도사에서 충분한 경의를 표하고자 한 사르트르의 진심을 읽을 수 있다는 건 그나마 다행이다.
/김살로메(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