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루스트가 활동했던 20세기 초까지 귀족 문화가 건재했던 프랑스 상류 사회에서는 살롱 모임이 유행했다. 위에 나오는 베르뒤랭 같은 유한마담이 주로 파티의 주관자였는데, 장소도 제공하고, 물주도 되면서, 참석자까지 선별했다. 시쳇말로 `오야붕 마음대로` 마담 역할을 수행했다. 교양 있는 모임도 많았지만 패거리 만들기 좋아하는 그룹에서는 은근히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곤 했던 곳이 살롱의 마담 자리였다.
놓인 숟가락만 차지하면 되는 손님 입장에서는 베르뒤랭이 주도하는 패거리 분위기를 거절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부인의 드넓은 드레스 폭 한 자락을 잡게 된 것을 행운으로 여기고 맘 깊이 안도하게 된다. 사람이 모이면 으레 편을 만들게 되는데, 권력이든 돈이든 그 무엇이든 가진 자 위주로 재편된다. 그런데 모인 사람들이 결속감을 가지려면 거기에 걸맞은 적이 있어야 한다. 합치고 뭉치는 이면에는 `우리가 남이가`란 정서가 따라 붙기 때문이다. 결속을 위해서라면 없는 적도 만들어 내야 한다. 적이 없으면 뭉칠 이유가 없다. `끼리끼리` 정서가 유지되는 최고의 비결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남`이 되기 두려운 우리는 오늘도 베르뒤랭 부인이 주최한 테이블에 앉아 그저 그런 피아니스트를 향해 휘파람 곁들인 환호를 보내고, 별 하자 없는 포탱 박사의 진단서에 이러쿵저러쿵 의문을 단다. `건전한 남`보다 `음험한 우리`가 주는 결속의 쾌감을 버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양심을 팔아 산 그 쾌락이 돌아서면 고대 환멸로 남을 것을 알면서도.
/김살로메(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