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내가 사나운 바람을 피해 실험실의 문지방을 넘어서는 순간 바로 내 옆에 한 친구가 등장한다. 내가 휴식을 취하는 순간마다 나타나던 친구다. 바로 기억이라는 고통이다. 의식이 어둠을 뚫고 나오는 순간 사나운 개처럼 내게 달려드는, 내가 인간임을 느끼게 하는 잔인하고 오래된 고통이다. 그러면 나는 연필과 노트를 들고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것을 쓴다.”
자의식과잉이란 파도에 휩쓸리면 쓰고 싶어도 쓸 수 없다. 던적스럽게 달라붙는 오염된 해초 같은 일상의 찌꺼기, 시도 때도 없이 증식하는 감염된 치어 같은 잡념들. 스스로를 괴롭히는 그 물결에서 벗어나야 비로소 쓸 수 있다. 자의식의 바다에서 눈물콧물 범벅인 채 가쁜 숨을 내쉬기만 하면 제대로 써지지 않는다. 흔들리되 평정심을 유지할 것, 힘들어도 유머를 잃지 않을 것, 연민을 품되 객관적 시선을 확보할 것. -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가 우리에게 주는 선물을 이 세 가지로 정의해보았다.
아우슈비츠에 수용된 레비는 운이 좋았다. 화학 전공자였기에 죽음의 가스실 대신 실험실에 배정받을 수 있었다. 다른 유대인들이 그를 부러워했고, 살아남기에 유리한 조건을 지녔던 그는 기회 있을 때마다 기록했다. 악몽 같은 수용소의 기억에 대해. 평정심을 유지하려 했고, 유머를 잃지 않았으며, 객관적 시선을 견지하고자 노력했다. 그는 끝내 살아남았고 그 끔찍한 기억의 조각들을 기록 문학으로 남겼다.
홀로코스트의 불편한 진실에 대해 그는 무조건 분노하거나 적개심을 드러내지는 않는다. 그저 갇힌 자들의 운명에 대해 동지적 연민으로 관찰하고 묘사했다. 인간 심연 깊숙한 본질에 대해 사색하고 통찰했다. 극한 상황에서 얼음 칼 같은 문장을 조각한 프리모 레비의 문장을 보면서 절망한다. 서늘한 칼날이 심장을 파고드는 순간 피톨이 뛰쳐나와 수만 송이 장미꽃으로 피어오르는 이 느낌. 차디찬 칼날로 벼린 기억의 고통을 수만 송이 장미꽃으로 피워내는 레비의 힘, 자의식을 제대로 제어한 그의 문장으로 내 오월의 허기를 채우는 중이다.
/김살로메(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