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정이 절박한 사내가 부동산 계약 건 약속을 잡았다. 그나마 마지막 남은 밭뙈기를 처분해야 오랫동안 병상에 누워 계신 노모의 치료비를 마련할 수 있다. 생업까지 마다하고 먼 길을 돌아 약속 장소에 갔다. 그런데 전국을 돌며 취미 삼아 땅을 접수한다는 매수자가 나타나질 않았다.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됐을 경우, 보편적 정서를 가진 이라면 어떻게 하는가? 미리 연락을 해 양해를 구하는 게 도리이다. 약속은 지키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했다고 잘못이 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적어도 그 약속 때문에 상대가 놓치게 될 기회비용을 빼앗는 무례는 범하지 않아야 한다. 시간적 여유가 있었는데도 연락조차 하지 않은 것은 절박한 상대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소위 `갑질`을 하며 약속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 사람에게는 그 사안이 별 것 아닌 게 될지 모르지만 당하는 사내로서는 심적·물적 손실이 이만저만한 게 아니다. 거칠 게 없는 이로선 그것이 단순한 사안으로 보이는지 모르지만 약자인 사내로서는 그 상황이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들이기 힘들다.
누구에게는 하잘 것 없어 보이는 것들이 다른 누구에게는 심각하게 와 닿는 것들이 얼마이던가. 그 복잡미묘한 감정을 우리는 상처라고 부른다. 상대적 약자들이 거치는 필연의 징검다리 상처.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오늘도 여린 영혼들은 힐링의 말씀을 찾아 길을 나선다. 웬만한 것은 흐르는 강물에 흘려 보내버려라. 섣불렀던 어제의 바람도, 잠시 기대했던 오늘의 희망도 애초에 내 것이 아닌 것이라면 과감히 저 강물에 흘려보내자. 서운함을 떨치지 못하는 건 흐르는 강물을 붙잡아 썩게 하는 것과 같으니.
/김살로메(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