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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제의 선택

김살로메(소설가)
등록일 2014-05-09 02:01 게재일 2014-05-09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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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형제 민담집 중에 `영리한 엘제`라는 이야기가 있다. 영리한 딸 엘제를 결혼시키려 하는 남자에게 한스라는 청년이 나타난다. 엘제의 영리함을 전제로 청혼하자 아내까지 거든다. `저 애는 골목에 바람이 부는 것을 볼 수 있고, 파리가 기침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맥주 심부름을 하러 지하실에 간 엘제는 머리 위 벽에 걸린 곡괭이를 보고 슬피 운다. 한스와 결혼 뒤 아이가 생기고 그 아이가 맥주 심부름을 왔다가 곡괭이가 떨어져 죽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서다. 이 말을 들은 모든 이들이 `어쩜 이다지도 영리한 엘제일까!`하고 동조한다. 한스와 결혼한 뒤에도 엘제 식 영리함은 발휘된다. 죽이 식을까 염려 되어 일하는 것보다 죽을 먼저 먹고, 곡식 거두는 것보다는 배가 부르니 잠을 먼저 자버린다. 결코 영리하지 않은 엘제에 실망한 한스는 방울 달린 새잡이 그물을 잠자는 엘제 주변에 친다. 잠에서 깬 엘제는 어리둥절해진다. `난 나일까, 아닐까?`를 고민하며 방울 소리 울린 채 집으로 달려간다. 현관문을 열어주지 않는 한스에게 집안에 엘제가 있냐고 물어본다. 한스는 태연히 그렇다고 답한다. “그럼 난 내가 아니구나.” 놀란 엘제는 이웃에게 도움을 청하지만 방울소리만 듣고도 사람들은 문을 닫아건다. 결국 엘제는 마을 밖으로 뛰쳐나간다.

이 이야기의 첫 문장은 `옛날 어떤 남자에게 영리한 엘제라는 딸이 하나 있었다.` 이렇게 시작한다. 엘제가 주인공인데 `어떤 남자`인 아버지가 이야기의 주체이다. 한마디로 남성적 시각으로 엘제를 바라본다. 엘제는 스스로 영리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아버지의 욕망과 거기에 동조한 엄마, 또 다른 아버지인 한스의 눈으로 본 엘제가 있을 뿐이다.

엘제는 영리했을까? 동화나 민담의 일반적 결말을 따르지 않은 것만으로도 그렇다고 말하고 싶다. 아버지가 만들어준 가면을 벗어 던지고, 외롭지만 당당한 자신만의 길을 선택했다고 믿고 싶다. 남성적 욕망의 올가미에 걸려 `알콩달콩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식의 발상이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김살로메(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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