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도마위에 오른 것이 `행정고시`이다. 단번에 사무관이 되는 이 신분 급상승제도는 문제가 있다. 사법고시와 함께 행정고시는 해방후 인력이 절대 부족할 시절에 급조된 제도이다. 나라꼴은 갖춰야 하고, 길러놓은 인재는 없고, 중간간부는 급히 필요할 시절에 만들어진 `고급공무원 채용 방법`이 고등고시였다. 그러나 지금은 인재가 넘쳐난다. 당연히 그런 급조된 채용방식은 필요 없어졌다. 행정고시제도를 가지고 있는 나라는 세계에서 한국밖에 없다.
사법고시는 2009년 로스쿨을 도입하면서 2017년부터 폐지될 예정이다. 외무고시도 지난해 국립외교원을 통한 선발로 바뀌었지만, 행정고시는 `5급 공채`란 이름으로 유지되고 있다. 미국이나 영국 등에서는 필요가 있을 때마다 그 업무를 잘 할 수 있는 인재를 별도로 뽑아 쓴다. 그러니 `행시 몇기` 따위를 따지는 끼리끼리문화가 형성될 수 없다. 이른바 `기수`를 따져서 패거리를 만들고, 서로 봐주는 문화가 없다. 중국에는 관시(關系)가 법 위에 군림한다. 친분을 잘 맺어두면 법 같은 것을 따질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우리나라도 `고시 기수`끼리 유대만 잘 맺어두면 법·제도가 무시된다.
싱가포르는 모든 공무원을 개방형으로 뽑아 고위공무원 승진 예정자는 민간기업 간부로 일정 기간 일하도록 한다. 일본도 고등고시제도가 있지만, 하급 공무원으로 임용해 실무를 밑바닥부터 배우게 한다. 공무원조직이 가장 비효율적이고, 민간기업은 가장 효율적이므로, 기업에서 마케팅, 인사, 생산 직군을 따로 뽑듯이 공무원도 그렇게 직군별로 세분화해서 선발하고, 민간기업에서 경험을 쌓아 효율성을 체득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은 행시에 합격만 하면 무조건 고급공무원에 임명된다. 행정고시 시험과목도 행정실무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일단 임명되면 그때부터 책에 있는 모든 내용을 잊어버려라”란 말도 있다.
현대행정은 전문성이 필요하고, 특히 지금 논의되고 있는 `국가안전처`같은 위험요소가 많은 직책에는 더욱 그러하다.
따라서 이런 직책에는 순환보직제를 제한하고, 위험도에 따라 보수에 차별을 두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책임을 엄히 묻는` 엄벌문화가 정착돼야 한다. 핀란드 처럼 부정부패 때문에 사고가 났다면 `세상에 얼굴 드러내고 살 수 없는` 정도의 처벌이 따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