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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의 우호성

김살로메(소설가)
등록일 2014-05-07 02:01 게재일 2014-05-07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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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보는 대로 느끼고 경험한 대로 생각한다. 따라서 누군가 무엇을 보고 느끼고 기록한 것이 다 진실일 수는 없다. 그렇다고 진실이 아니라고 그 느낌의 진정성까지 진실이 아닌 것은 아니다. 특히 모든 이국적 시선은 진실과는 별개로 신선한 시각이 될 수는 있다.

펄 벅 여사는 우리나라를 무한 애정의 시각으로 바라본 작가 중의 한 사람이었다. 작가의 장편 `살아있는 갈대`는 그 좋은 예이다. 구한말에서 해방될 때까지 한국의 근대사를 살아간 4대를 그리고 있는데 당시 우리 정서를 이해하기에 좋은 작품이다. 1960년대 초 취재 차 우리나라를 방문한 작가의 에피소드 한 자락이 자못 흥미롭다.

여사는 지프를 타고 경주 안강 근처를 지나고 있었다. 황혼녘 지게에 볏단을 가득 진 농부가 보이는데, 볏가리를 잔뜩 실은 소달구지를 끌고 묵묵히 들길을 가더란다. 미국인 눈으로 봤을 땐 지게를 지기는커녕 소달구지에 올라타 채찍을 휘둘러야 상식적인 게 되었다. 그런데 우리의 농부는 소와 짐을 나눈 채 나란히 들길을 가고 있으니 여사 눈에는 무척 신기하게 보였다.

여사는 그 한 장면을 두고 `고상한 국민이 사는 보석 같은 나라`라고 격찬까지 한다. 실은 그 목가적 풍경이 `고상한 국민적 정서`와 그리 큰 관계가 있는 건 아니다. 드넓은 땅에다 도로 사정이 좋은 그들 입장에서는 마차에다 곡식과 사람이 동시에 타고 채찍을 휘두르며 달릴 수 있다. 하지만 말 달구지도 아니고 소달구지인데다 도로 사정도 좋지 않은 우리 입장에서는 볏짐을 하나라도 더 옮기기 위해서 농부도 지게를 질 수밖에 없다. 거창하게 자연이나 동물과 공생하겠다는 취지에서가 아니라 주어진 환경에 맞는 행동 패턴을 취했을 뿐이다. 그것이 작가의 눈에 신선하게 비춰졌을 뿐이다.

`마차(carriage)의 경험`을 가진 사람이 `소달구지(oxcart) 풍경`을 보고 낭만적 우호성으로 읽어 내리는 것. 문학이나 예술이 과장된 희망이나 과도한 서정을 조장해서는 안 되겠지만 가끔은 이런 무조건적 따스한 눈길이 싫지는 않다. 모두 지쳐 있는 요즘이라면 더더욱.

/김살로메(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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