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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하다는 것

김살로메(소설가)
등록일 2014-04-29 02:01 게재일 2014-04-29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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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책없이 후하게 구는 것은 사람들의 호의를 사는 데는 서투른 방법이다. 그렇게 하면 호의를 얻을 자의 수보다도 더 많은 사람들의 반감을 산다.” 몽테뉴의 수상록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신선함을 느끼면서도 혼란스러움을 맛보게 해주는 말이다.

시대를 앞서간 사상가답게 몽테뉴가 대단한 통찰을 지녔다는 점에서는 신선하고, 그럼에도 인간에 대한 그의 시선이 어딘지 삐딱하게 보인다는 면에선 혼란스럽다. 그런데 가만 들여다보니 후자는 판단유보해도 되겠다. 내가 혼란을 느낀 것은 내 통찰력이 그에 미치지 못한 결과이다. 인간의 다양한 속성을 자유자재로 파악하는, 불편한 진실을 꿰뚫는 그의 눈길 앞에서 다만 뜨끔해질 뿐이다.

천성 깊숙이 선한 사람들은 태생적 유전자가 `주책없이 후하게` 굴도록 설계된 자들이다. 호의나 베풂은 그들의 자연스런 친구이다. 진심에서 오는 그 호의가 서툰 것인지 영악한 것인지 그들은 생각조차 않는다.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하고 좋아서 나눔을 실천할 뿐이다. 문제는 그것을 바라보는 일부의 시선이다. 호의를 베푸는 그들에게 고마움을 느끼는 건 잠시다. 간사한 게 사람인지라 그 다음의 호의가 이전만 못하거나, 기대하는 호의에 다음 것이 못 미치면 이내 실망하고 의심한다. 몽테뉴의 다음 말이 그 사실을 뒷받침해준다. “받아버린 것은 이미 계산에 들어가지 않는다. 사람은 앞으로 후대 받을 것밖에는 좋아하지 않는다. 그 때문에 왕은 남에게 주다가 줄 것이 없어질수록 그만큼 심복을 잃는다.”

받는다는 것에 고마움을 느끼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문제는 그 유효 기간이 찰나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지나친 베풂은 사람들로 하여금 후대를 기약하게 하고, 그럼에도 착한 사람들은 계속해서 선행을 하리라는 것. 한편으로는 호의를 기대하는 그 사람들을 잃을까, 주는 것조차 조절해야 하는 군주까지 있어야 한다는 무섭고 서늘한 통찰. 몽테뉴의 저 한 마디는 순한 사람과 탐욕스런 사람이 함께 살아가도록 운명적으로 조직화된 게 인간사라는 것을 깊숙한 찌름으로 보여주는 것만 같다.

/김살로메(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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