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서 시작해 전 유럽의 지성적 양심을 뒤흔든 드레퓌스 사건은 1894년에 일어났다. 장교 드레퓌스는 독일군과 내통한다는 혐의를 받게 된다. 혐의 없음, 이라는 명백한 증거들이 숱하게 나왔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가 유대인이었다는 게 빌미가 되었고, 국가 안보와 군대의 권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한 사람의 희생양이 필요했다. 비공개 재판에서 드레퓌스는 유죄를 선고 받았다. 그때 드레퓌스의 결백을 밝히는데 주저함 없이 앞장 선 이가 에밀 졸라였다.
언론은 사건의 진실보다 마녀사냥을 즐겼다. 반유대주의 여론을 앞세워 드레퓌스를 진범으로 몰았고, 드레퓌스의 결백을 옹호하는 지식인들을 압박했다. 에밀 졸라는 굴하지 않았다. `절대왕정 시대에나 있을 법한 사악한 일이 자행되는' 것을 막고자 기꺼이 펜을 들었다. 무려 열 세편의 격문을 발표하며 국가가 개인의 인권을 침해하는 것을 성토했으며, 진실과 정의를 옹호하는데 온힘을 다했다.
기망이 횡횡하는 이 시대, 양심에 흔들림 없이 행동한다는 건 쉽지 않다. 개인의 이익을 위해 흥분하거나 분노하기는 얼마나 쉬운가. 하지만 타자의 인권이나 공익적 진일보를 위해 제 양심을 거는 건 흔치 않다. 뒤숭숭하기만 한 요즘 양심을 깨치는 영혼의 외침이 하루에도 몇 번씩 들려온다. 그것이 공익이나 약자를 위한 것일 경우 공감지수와 흥분지수는 높아진다. 혁명은 위대하고 큰 것만은 아니다. 선을 위해 진실을 말하는 것, 이것만으로도 혁명적 행위라 할 수 있다. 에밀 졸라는 그것을 실천한 작가였다.
/김살로메(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