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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봄날

김살로메(소설가)
등록일 2014-04-25 02:01 게재일 2014-04-25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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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나라가 슬픔의 도가니다. 며칠 째 집단 우울에 감염된 사람들로 넘쳐난다. 직접 고통을 당한 분들에 비할까만 근래에 이토록 안타까움과 갑갑함에 절망해본 적도 없다. 세탁소 옷걸이에 걸려 있는 실종 학생들의 교복들. 며칠 째 오지 않는 주인을 기다리는 처연한 그것을 방송사 카메라가 클로즈업한다. 말 없이 비춰주는 그 장면만으로도 또 눈시울이 붉어진다. 슬픔을 덜어내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일부러 과장된 명랑을 낯빛에 심는다. 독서모임이 있는 날이다. 자유 토론에 들어가면 오늘도 어김없이 눈물바다가 되고 말 것이다. 웃음을 되찾을 묘안을 짜본다. 애송시 낭송 대회를 열기로 한다. 떨어지는 봄꽃에게도, 날아드는 꽃가루에게도, 또한 그 봄을 맞이한 우리 모두에게도 위로가 필요한 시간이다. 속울음 삼키며 저마다 준비한 시를 읊는다. 가슴 가득 쌓인 절망의 켜들이 조금이나마 낮아지는 기분이다. 이 시간만큼은 슬픔의 그림자는 잠시 미뤄 놓기로 한다.

`이 봄바람을 어찌할 거나? / 나름 수양했다는 수양버들도 / 저리 흔들리는데 / 대충 산 나야…. / 당연히 못 참고 달려야지.' 중년의 나이에도 사랑의 불씨는 살아 있더라, 며 누군가 이 시를 읊었다. 성급한 박수와 환호가 이어질 만큼 공감하는 분위기다. 하기야 사랑에 나이가 무슨 상관이던가. 어쩐지 사랑 앞에 시시해진 나 같은 목석파도 시구가 외워질 정도로 이 시는 참말로 진솔하게 와 닿는다. 제목도 시인 이름도 출처도 모른다는 낭송자를 대신해 누군가 인터넷 검색을 한다. 이수동 화백의 그림 에세이`오늘, 수고했어요'에 나오는`이 춘풍'이란 시다.

집단으로 우울해지는 것과 봄은 어울리지 않는다. 집단으로 꽃바람이 나, 이 춘풍 하면서 맘껏 까불대고 한껏 발랄해져도 좋을 이 봄날, 여전한 상실감이 우리 곁을 맴돈다. 수양 쌓았다는 수양버들조차 저리 흔들리고, 대충 산 필부필부들은 `당연히 못 참고 달려'야 할 이 봄이건만, 지독한 슬픔의 바리게이트는 절벽이 되어 바위가 되어 가슴에 부딪는다. 누가 이리 만들었나.

/김살로메(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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