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을 맞이하는 주인장의 얼굴빛 또한 미소로 넘쳤다. 나날이 줄기를 키워가는 매발톱꽃, 무더기로 지고 있는 할미꽃, 아직 덜 핀 물달맞이꽃 등을 둘러보는데 탄성이 절로 터졌다. 주인의 여문 손 끝에 존경심이 일었다. 아닌 게 아니라 그미의 손톱 밑은 까맸다. 텃밭의 잡풀을 걷어내고, 마당의 꽃나무를 돌보느라 생긴 영광의 흔적이었다. 네일 아트로 단장한 여느 여인의 손톱보다 예뻐 보였다.
흰 탱자꽃과 쟈스민 향이 번지는 거실에서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녀가 읊는 말은 그대로 한 편의 시가 되고 한 소절의 노랫말이 되었다. 처음엔 화분에 돋는 잡초조차 생명 있는 것이라 여기니 함부로 뽑기 힘들었다고 했다. 모종삽으로 흙만 뒤집어 놓았더니 다음날 다시 살아나더라고 했다. 천성으로 순수하고 배려 깊은 이였다. 누가 시켜서 하는 행동이 아니라 마음 저 끝에서 나오는 진심이란 걸 알겠다.
우리 행동의 모든 원천은 `쾌락`에 있다고 누군가 말했다. 누군가에게 오늘 점심 같이 해요, 라고 말 건네는 건 듣는 사람도 행복하겠지만 말 건네는 나도 행복해지기 때문이다. 내가 유쾌하지 않은 상태에서 베푸는 호의는 진정한 호의가 아니다. 의무감에서 하는 행동은 순수한 의미에서 `쾌락의 감정`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자발적 동기의 모든 유쾌한 감정에는 엔돌핀이 솟구친다.
자발적으로 하는 모든 유쾌한 행동은 일차적으로 남을 즐겁게 한다. 하지만 결국 내 자신을 위한 일이다. 내가 즐겁지 않으면 남을 즐겁게 하지 못한다. 그미의 방명록에 못다 쓴 한 마디를 이렇게 남긴다. 자발적인 당신의 무구한 눈빛과 환한 미소는 타인에게 제 삶을 자발적 유쾌함에 대해 되돌아보게 한다고. 그런 당신은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김살로메(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