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서 보면 조팝꽃은 갓 지은 쌀밥을 누군가 손톱 크기로 뭉친 뒤 가지가 휠 정도로 몽글몽글 매달아 놓은 느낌이다. 가까이서 보면 그 느낌은 또 다르다. 희디흰 꽃잎 하나하나는 다섯 개의 홑겹으로 되어 있는데 잘 튀겨 놓은 팝콘 같다. 보릿고개를 넘던 그 시절의 정서를 대표하는 꽃이 조팝꽃과 이팝꽃이다. 조팝꽃이 튀긴 좁쌀 모양이라거나 조밥을 닮았다는 말에는 공감이 가지 않는다. 모양으로만 보면 고봉쌀밥을 닮은 정도로는 이팝꽃보다 조팝꽃이 더하다. 조팝꽃이 이팝꽃이 되어도 좋았겠다.
좋아하는 봄꽃도 그때그때마다 다르다. 옛날에는 화사한 복사꽃이 그리 좋더니 요즘은 은은한 조팝꽃이 새롭게 보인다. 어린 시절 봄날에도 조팝꽃이 지천으로 피었었다. 우리는 그 꽃을 싸리꽃이라 불렀다. 아마 조팝나무로도 싸리비를 만들어왔기 때문에 어른들부터 그렇게 불렀던 모양이다. 봄볕 다사로운 싸리꽃 울타리 아래서 소꿉장난을 하곤 했다. 아득하게 번지는 싸리꽃향을 맡으며 붉은 돌을 빻아 고춧가루를 만들고, 진흙을 이겨 떡을 빚었다. 빈 동동구리무 통과 소주병뚜껑으로 세간을 삼기도 했다. 순정한 시절이었다.
싸리나무는 따로 있는데다 종류, 모양, 꽃 피는 시기 등이 조팝나무와는 다르다는 것을 최근에 알았다. 내가 알고 부르던 싸리꽃이 실은 조팝꽃이라는 게 영 어색하다. 꽃 이름 하나 새로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건 그것과 관련된 기억 때문이다. 모든 것을 기억하지 못하는 우리는 그것의 소중함을 알고 느낀다. 순간의 기억이지만 구체성을 띈 그 `유의미한 것`들을 인위적으로 바꾸려하면 마음의 저항을 받는다. 그러니 조팝꽃은 내 맘 안에서는 언제나 싸리꽃이다. 맘이 쉽게 조팝꽃으로 받아들여 버리면 추억마저 변할 것을 염려하기에.
/김살로메(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