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26년간 쌓은 음악… 저의 자부심이죠”

연합뉴스
등록일 2014-03-28 02:01 게재일 2014-03-28 14면
스크랩버튼
 tvN 음악 토크쇼 `방자전` 통해 방송활동 나선 변진섭
`발라드의 왕자`, `둘리`, `섭섭이`….

이런 별명만 거론해도 온 국민이 단 한 사람을 꼽을 수 있다. 바로 변진섭(48)이다. 그는 1980년대 말과 1990년대를 관통하며 가요계 르네상스 시대를 주름잡은 밀리언셀러다. 이전부터 발라드란 장르는 있었지만 `발라드 가수`란 용어는 변진섭부터 널리 쓰이기 시작했다. 발라드 족보를 따지면 맏형인 셈이다.

최근 서울 동부이촌동 서울스튜디오에서 새 싱글을 녹음 중인 변진섭을 만났다. 이곳은 그에게 집같이 편한 곳이다. 밀리언셀러를 기록한 1집과 2집을 비롯해 12장의 앨범 중 10장가량을 이곳에서 녹음했다.

최근 tvN의 새 음악 토크쇼 `근대가요사 방자전`을 통해 오랜만에 방송 활동에 나선 그는 “공연을 꾸준히 했는데 TV 출연을 안 하니 사람들이 `요즘 뭐하냐`고 묻더라”고 웃었다.

갑작스러운 예능 프로그램 출연에 대해 “나와 맞는 방송이 몇 개 없고 내가 원한다고 나갈 수 있는 게 아니다”며 “이 프로그램은 내가 좋아하는 주병진 형이 끌고 가는 구도가 좋았고 김완선, 정원관 등 옛 동료와 함께 하니 마음에 들었다. 이걸로 예능에 발을 들이겠다는 게 아니라 여기선 내가 양념 역할을 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변진섭은 경희대 농학과 재학 시절 캠퍼스 그룹인 `탈무드` 5기 멤버로 1987년 MBC `신인가요제`에서 참여하며 가요계에 데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는 이미 고 3때부터 MBC 라디오 PD 겸 인기 DJ였던 고(故) 이종환이 이끄는 음악감상실 쉘부르에서 통기타를 치며 노래했다. 이곳 무대에서 활약하던 중 신인가요제에도 나갔다. 부모는 아들이 변호사나 판사가 되길 원했지만 그는 형이 듣던 비지스의 LP를 접한 뒤 퀸, 마이클 잭슨, 레드 제플린 등의 음악에 `휙` 빠져들었다. 이때부터 직접 기타를 치며 노래하기 시작했다.

그는 무명의 학생 신분이지만 쉘부르의 골든 타임에 노래하면서 `재목`으로 이름나기 시작했다. 가요 관계자들과 가수들이 그의 노래를 들으러 올 정도였다. 밤이 되면 그는 이태원의 라이브 클럽에서도 노래했다. 대학 수업에 지장이 있을 정도였다.

3년간 무명으로 노래한 끝에 1988년 이곳에서 낸 1집 `홀로된다는 것`에 단박에 반응이 왔다. 타이틀곡 `홀로된다는 것`은 KBS `가요 톱 10`에서 5주 연속 1위를 했고 `네게 줄 수 있는 건 오직 사랑뿐`, `새들처럼`, `너무 늦었잖아요` 등의 수록곡들도 잇달아 사랑받았다. 2~3개월 만에 그는 스타가 됐다. 이어 1989년 발표한 2집 `너에게로 또다시`로 더 큰 대박이 터졌다. 이 앨범의 `희망사항`, `숙녀에게`, `로라` 등이 함께 히트했다. 데뷔 당시 `골든디스크` 신인상을 거머쥐었던 그는 이듬해 이 앨범으로 대상을 차지했다.

변진섭 시대가 열리자 광고와 방송 출연 요청이 그야말로 쏟아졌다. 그러나 “애초부터 스타가 되기보다 `다운타운의 제왕`이 되고 싶었다”는 그는 “앨범을 내고 노래하면서 내가 원하는 사업을 하며 이중생활을 하고 싶었다”고 회상했다.

그랬기에 무더기로 쏟아지는 광고와 방송 출연도 대부분 거절했다. 그는 당시 이문세 등의 선배들과 어울렸는데 뮤지션은 상업적인 광고를 하면 생명이 끝난다는 `개똥철학`과 자존심이 세던 시절이라고 웃었다.

3집 `어떤 이별`(1991), 4집 `너와 함께 있는 이유`(1991), 5집 `그대 내게 다시`(1992) 등 그의 인기는 수년간 탄탄했다.

그는 1999년 9집 `20B`을 발표하고 2000년 12살 연하의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수중 발레) 국가대표 출신인 이주영씨와 결혼했다. 당시 `발라드의 왕자`와 `인어 공주`의 만남으로 화제였다.

가정을 꾸린 뒤 그는 5년간 앨범 공백기를 가졌다. 2004년 낸 10집 `히스토리`(He`story)는 하광훈과 3집 이후 14년 만에 다시 만나 작업했지만 예전 같은 반응은 아니었다.

인기의 무상함을 느끼기 충분한 상황이었을 터. 그러나 그는 “난 처음부터 인기가 팍 올라갔을 때도 무덤덤했다. 눈물 한 번 흘린 적도 없었다. 스타가 인생의 목표가 아니었고 인기가 물거품이란 걸 알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방송 대신 공연에 주력해온 세월에 대한 자부심이 강했다. “공연만 하는 지금이 옛날보다 좋다”며 “꿈을 못 깨는 게 아니라 지난 26년간 쌓은 음악 이력에 대한 `프라이드`가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오늘도 녹음하지만 욕심은 옛날과 다르다”며 “히트해 1위를 하는 게 아니라 `팬들이 좋다고 느껴야 할 텐데`란 마음이다. 음악의 길은 하나님이 내 인생에서 베스트로 작업해준 운명이다. 난 슬럼프도 없었고 나쁜 생각을 할 정도의 굴곡도 없었다. `왕년에 내가 가수왕이었는데`가 아니라 음악 자부심이 있고 팬이 있으니 행복하다. 되레 지금 더 겸손해지려 한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

방송ㆍ연예 기사리스트

더보기 이미지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