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카의 여왕서 32년만에 국내활동 재개한 계은숙
분장실에서 계은숙의 메이크업을 하던 남자 스태프가 “형, 아니 누나”라고 말을 바꿀 정도로 그의 성격은 가식 없이 호탕해 보였다. 바쁜 와중에도 집에서 싸온 김밥, 과일을 먹으라며 살갑게 기자를 챙겼다.
1980~90년대 일본에서 `엔카의 여왕`으로 군림한 계은숙이 32년 만에 국내 활동을 재개했다. 이달 말 국내에서 `주문`, `꽃이 된 여자`, `가지말아요` 등 신곡 3곡과 `기다리는 여심`, `노래하며 춤추며`, `나에겐 당신밖에` 등 과거 히트곡 3곡 등 총 6곡이 수록된 음반을 발표한다. 신곡을 일본어로 녹음해 4월 중순 일본에서도 출시한다.
단장을 마친 계은숙은 가슴에 화려한 장식이 수 놓인 주황색 드레스에 금색 구두를 신고 인터뷰 자리에 앉았다. 1977년 럭키 샴푸 광고 모델로 데뷔한 스타답게 고운 피부와 화사한 미소는 변함 없었다.
그는 1979년 발표한 `노래하며 춤추며`로 이듬해 MBC `10대 가수가요제`에서 신인상을 받으며 스타덤에 올랐지만 1982년 돌연 일본으로 건너갔다. 이어 1985년 `오사카의 모정`으로 일본 가요계에 데뷔해 1988년~1994년 NHK `홍백가합전`에 7회 연속 출연했고 1990년에는 일본 레코드 대상인 `앨범 대상`을 받으며 `엔카의 여왕`으로 사랑 받았다.
그는 일본행에 대해 “여자로서 사랑에 실패했다”며 “외롭고 힘든 시련이었지만 이겨내니 뜨거운 가슴을 안고 노래하는 여자가 될 수 있었다”고 웃었다.
고국 무대에 오르는 의욕은 대단해 보였다.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활동하기 위해 일본 활동 재개도 추진 중이며 앞으로 동남아시아 시장으로 무대를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다시 태어난 느낌이죠. 젊어지는 기분이고요. 제 고향이니까요. 국내 팬들과 라이브 무대에서 만나면 가슴이 뜨거워질 것 같아요. 지난해 처음 방송 무대에 섰을 때 눈물을 흘렸어요. 고국 팬들에게 정말 순수하게 다가가고 싶습니다.” 활동을 재개한 가장 큰 이유는 아흔 살 고령인 어머니였다. 그는 당뇨와 알츠하이머로 투병 중인 어머니에게 한국에서 다시 노래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계은숙이 약 26년의 일본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에 돌아온 건 지난 2008년. 2007년 불미스런 일로 일본에서 재판을 받은 후 비자 연장이 거부되자 귀국해 5년 동안 칩거 생활을 했다. 그간 우울증 치료를 받았다는 얘기도 흘러나왔지만 지난해 여름부터 활동 재개를 준비했다.
“지난 30여 년간 이렇게 쉬어본 적이 없다”는 그는 “어머니에게 못다 한 딸 노릇을 하고 싶어 평범한 시간을 보냈다. 또 국내 가요계도 세대가 바뀌어 공부가 필요해 나에게 충실한 시간을 보냈다. 바삐 가지 말고 이젠 좀 천천히 가고 싶다”고 웃었다.
그는 지금의 K팝 가수들이 활동하기 훨씬 이전 물꼬를 튼 원조 한류 가수.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전 총리가 팬클럽 회원이었을 정도로 대중적인 사랑을 받았다.
그는 희로애락이 있던 자신의 가수 인생을 담은 자서전을 준비 중이다. 주제는 `휴먼`으로 한국과 일본에서 출간하는 걸 목표로 며칠 뒤 작가 미팅을 한다.
그는 “사람이 사는 모습이 다 예쁘고 아름답지 않다”며 “사랑받는 사람으로서 부족함이 있던 내 모습에 상처받은 분들을 위해 기쁨, 슬픔, 아픔이 있던 옛 이야기를 모두 풀어낼 생각이다. 난 팬들의 사랑이 끊기지 않았기에 존재할 수 있었다. 내 이야기가 여전히 시련 속에서도 성취하기 위해 각기 다른 모습으로 뛰는 사람들에게 공감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저에게 노래는 인생입니다. 여전히 다시 태어나는 시간을 갖게 해줬으니까요. 이제 나이가 들어 쉽지 않겠지만 진정성 있고 진지한 마음으로 활기찬 노래를 들려주고 싶어요.” 인터뷰를 마치고 잠시 기도하는 시간을 가진 그가 무대에 올랐다. 세월에 녹슬지 않은 특유의 허스키한 음색으로 히트곡을 열창하자 객석에서는 큰 박수가 터져 나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