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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이 사라진 자리

김살로메(소설가)
등록일 2014-03-03 02:01 게재일 2014-03-03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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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가장 반갑게 알은 체를 하는 사람은? 외판원이나 전도하는 사람이란다. 개인적으로 덧붙이자면 그 다음이 어린이들 쯤이 될 것이다. 한 엘리베이터를 쓰는 주민 수가 많은 고층 아파트에 산다면 이 말을 실감하게 된다. 특히 아이들이 다 커버린 중년 이후라면 새 이웃과 알고 지내는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는다. 나부터 이웃에 누가 사는지, 그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어떤 취미를 가졌는지 거의 알지 못한다. 아이가 어리다면 그나마 같은 어린이집을 보낸다, 학습 정보를 공유한다는 등의 이유로 이웃과 알고 지낼 명분이라도 생기지만, 아이들마저 다 커버렸으니 그런 기회는 점점 줄어든다.

엘리베이터를 타면 흔히 보는 풍경. 마지못해 인사를 건네는 것도 잠시, 대개 스마트폰을 꺼내 애꿎은 화면만 터치하고 또 터치한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무에 그리 급하게 검색할 정보가 있을 것이며, 무슨 그리 다급하게 확인해야 할 메시지가 있단 말인가. 하지만 나부터 그런다. 그 짧은 시간, 어색함을 감추기에는 스마트폰만큼 안전한 방어막도 없다. 그나마 아이들을 만나면 맘이 많이 누그러진다. 어른 이웃을 만났을 때의 어색함을 보상이라도 받듯이 아이들에게 말을 건넨다. 의외로 아이들은 성가셔하지 않고 이것저것 화답을 해준다. 소통의 부재나 현대인의 고립감이 뭔지를 모를 아이들의 천진성이 부러운 순간이다.

농경사회의 집은 원래 정착이 그 주된 목표였다.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현대 도시인들 대부분은 정주민이 아니라 유목민에 가깝다. 처한 입장이 다양한 만큼 이곳저곳을 떠다니며 산다. 이웃을 사귈 시간도 의지도 생기지 않는다. 대신 인터넷의 각종 커뮤니티 사이트를 기웃거리거나 현실적 도움이 되는 모임들을 찾아 나선다. 이웃 없는 사회가 가능한 시대가 오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나. 이웃 없어도 불행한 줄 모르는 도시인들은 이 순간에도 옆집 안부 대신 스마트폰의 안녕부터 점검한다. 실체 없는 기기 앞에서 허허실실 혼자만의 웃음을 짓는다. 그 많던 이웃은 이제 스마트폰 안에 산다.

/김살로메(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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